사람들은 연대와 소속감을 필요로 한다. 누구와도 섞이지 못하는 사람은 집단의 눈총을 받거나 심지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곤 했다. 반대로 탄탄한 인맥은 생존경쟁에서의 승리나 출세의 지름길이 됐다. 여전히 혈연 지연 학연 같은 것들이 맹위를 떨치는 건 그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같은 연대와 소속감이라는 것이 배타적인 성격을 띠거나, 더 큰 공동체를 아우르지 못할 때는 심각한 병폐가 된다.

요즘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새삼 조명되듯, 사적인 친분으로 얽힌 관계가 공공의 영역으로 침범해 국가의 질서를 뒤흔들고 역사를 퇴보시키며 무고한 국민들을 수없이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 바로 이 ‘패거리’의 오명이 덧씌워지고 있다. 신앙이라는 공통분모를 앞세우면서, 종교적인 범주를 넘어서 정치적 이득이나 경제적 이득을 쟁취하는 데까지 몰두하는 집단으로 오인 받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탓을 할 것도 없다. 바로 우리 내부에서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정정당의 누군가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거나 영웅시하는 일들이 예사로 벌어진다. 그 인물이 정치행위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를 구현하고 있느냐는 아예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계에도 교회에도 심각한 해를 끼치는 행위이다.

올해 초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전 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2023 한국교회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다수는 한국교회에 대해 ‘배타적’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자가 정치적 이슈에 대해 발언이나 찬반활동을 하는 데에 응답자의 83.2%가 반대의사를 표했고, 거꾸로 ‘한국교회가 교회 밖 비판여론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물음에도 80%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바 있다. 뼈아픈 질타이다.

패거리 문화가 감히 교회를 잠식하는 일을 더 이상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 진정한 하늘백성, 천국시민이라면 ‘더 큰 우리’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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