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익상 교수성공회대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신익상 교수성공회대한국교회환경연구소 소장

환경부가 뜬금없이 일회용품 사용 규제 완화 방침을 발표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을 대신해서 CF100(Carbon Free 100%)을 목표로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그러면서 정부의 각 행정 부서에서 진행해 오던 탄소중립 지원사업이 2024년부터 전면 백지화 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이런 일련의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주요 사업들을 동시다발로 빠르게 삭제해 나가고자 하는 현 정부의 의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적 노력 전반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이러한 의지가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이고, 그 목표가 달성되면 이루어지는 일은 무엇일까? 도저히 가늠되지 않는다. 이전 정부에서 추진하다 넘겨준 탄소중립 정책을 거부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추진하고자 하는 것은 탄소중립보다 더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인가, 아니면 기후위기 대응의 전면적 후퇴인가?

그런데, ‘탄소중립’ 자체도 대단히 약한 목표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가? ‘1.5℃ 경로’라는 최종적인 목표에 비하면, ‘탄소중립’은 매우 소극적인 목표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룬다고 해도 산업화 이전 대비 1.5℃ 밑으로 지구평균온도 상승을 막아낸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기후위기 대응에는 안 통하는 얘기다. 

문제는 속도와 과정이다. 2050년이 될 때까지 별 조치를 안 하다가 그때가 가까워져서야 급하게 탄소중립을 이룬 경우와 지금 당장 탄소중립을 이룬 경우의 결과는 천지차다. 누적되는 온실가스의 양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2050년이 돼서 떡하니 탄소중립을 이루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런 탄소중립은 기후위기 대응에 어떤 도움도 안 된다. 지금 당장 실효성 있는 탄소중립 정책과 제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지구온난화를 좀 늦긴 했어도 그나마 막을 수 있다. 그런데, 탄소중립 지원 예산을 깎는다는 것은 시민사회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해 일하지 말라는 얘기다. 정부 주도로 더 극적인, 그러면서도 실질적이고 실효성 있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마련해서 추진할 테니 그동안 수고한 시민사회는 잠시 숨 돌리고 쉬라는 말일까? 제발 그런 것이길 바란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내세워서 일회용품 규제 방안을 대폭 완화하는 취지의 발표를 한 것은 또 무슨 이유인가? 더 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생태 환경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민생과 여론을 내세우며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를 무기한 연기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비닐봉투 사용 시 과태료 부과를 취소한 것은 또 왜인가? 마땅히 관철해서 어렵더라도 추진해야 할 일에 손을 놓음으로써 별 ‘부담 없이’ 소상공인과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겠다는 발상은 아닌가?

기후위기 문제는 여러 문제 중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모든 문제를 가로질러 걸쳐 있는 기반 문제다. 그래서 가장 우선해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며, 어떤 문제를 고려하든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일회용품 규제가 어려움과 불편함을 가져온다면,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최소화 하면서 연착륙할 지를 함께 고민하면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어떤 규제가 누구에게 경제적 피해를 주기에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그러한 규제가 없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더 크고 광범위한 피해를 초래한다. 인류는 지금 사는 방법에 대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정부는 권력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잠시 위임된’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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