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소방관으로 장애인 동료 도와 
사이클 종목 금메달 3개 수확한 아들
‘올해의 스승상’ 수상자인 아버지
명예퇴직 후 전문인선교사 꿈 키워

아들 윤중헌 씨(오른쪽)가 동료 김정빈 씨와 장애인 아시안게임 사이클 종목에 참가해 금메달을 수상하는 모습.
아들 윤중헌 씨(오른쪽)가 동료 김정빈 씨와 장애인 아시안게임 사이클 종목에 참가해 금메달을 수상하는 모습.

윤성진 장로(정읍성광교회)는 9년째 꾸준하게 감사노트를 작성한다. 쓰면 쓸수록 감사의 제목들이 점점 많아져, 이제는 그만두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이 감사노트를 가득 채우는 주제 하나가 생겼다. 그 주인공은 맏아들 윤중헌 씨다.

윤중헌 씨는 10월 28일 중국 항저우에서 폐막한 제4회 아시안 패러게임, 즉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3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참가한 종목은 탠덤사이클.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한 명씩이 짝을 이루어 자전거 경주를 하는 방식으로 경기가 이루어진다. 비장애인인 윤중헌 씨가 앞에서 핸들을 잡고, 시각장애인인 김정빈 씨가 뒤에 앉아 페달을 밟는다. 무엇보다 팀원들의 호흡이 중요한 이 종목에서 32세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환상의 조화를 이루어, 다른 나라 팀들을 압도했다.

첫 종목인 4000m 개인추발에 이어, 18.5km 도로 독주와 69㎞ 개인 도로 부문을 잇달아 석관하며 이 종목 첫 한국인 우승이자, 역대 사이클 종목 사상 첫 3관왕의 기록까지 남겼다.

윤중헌 씨는 당초 화학을 전공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다 호기심에 들어간 학교 자전거동아리를 통해 재능이 만개했고, 이후 참가하는 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2017년에는 대표적 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코리아’에서 1위에 올랐다.

한 때는 전문 선수로 전향하라는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지만, 취미로만 즐기겠다며 결국 소방관의 길을 택했다. 현재는 남양주 별내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그를 자전거의 세계로 처음 안내한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호남고 교사로 재직하던 윤성진 장로는 어려서부터 두 아들에게 나이에 맞춘 자전거를 선물하며 재미를 붙이도록 했고, 실제로 장남 중헌 씨는 자전거를 즐겨 타며 아버지의 학교 운동장에서 맹연습을 하곤 했다. 폐활량이 타고난 데다, 지구력과 순발력까지 좋아 중헌 씨에게는 사이클이 안성맞춤이었다.

종종 가족끼리 하이킹을 떠났고, 특히 부자가 함께 목포까지 180km나 되는 먼 길을 하루에 주파한 추억도 갖고 있다.

이렇게 가족애가 깊고, 자전거를 좋아하는 것 말고도 두 부자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바로 신앙심을 바탕으로 이웃을 섬기는 봉사정신이 투철하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일본어와 도덕 과목을 담당한 윤 장로는 가르치는 실력이 탁월하고, 학생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스승으로도 인정을 받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주변에 큰 귀감이 됐다. 틈틈이 익힌 건축과 목공기술들로 정읍성광교회 사랑의봉사단에서 활약하는가 하면, 개인적으로도 지역 독거노인들의 집수리를 해주는 활동에 나서곤 했다.

정읍성광교회 윤성진 장로(왼쪽 끝)가 2019년 ‘올해의 스승상’을 수상하며 가족들과 촬영한 기념사진. ①③
정읍성광교회 윤성진 장로(왼쪽 끝)가 2019년 ‘올해의 스승상’을 수상하며 가족들과 촬영한 기념사진. ①③

그 결과 학교장과 동료교사 그리고 제자들의 적극적인 추천과 응원 속에서 교육부와 조선일보가 제정한 ‘2019년 올해의 스승상’을 수상했다. 1989년부터 32년 동안 몸담은 교직생활 중 최고의 보람이자 영예였다.

특히 선교복지단체인 정읍 나눔의집에서 야학으로 봉사하며 장애인들을 오랫동안 섬긴 일은 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헌 씨에게 탠덤사이클 종목에 참가해보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큰 고민 없이 결정한 것 또한 평소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봉사정신 덕분이었다.

사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수상할 경우 병역혜택이나 포상금을 받는 것과 달리, 장애인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는 아무리 여러 개의 금메달을 딴다 해도 중헌 씨처럼 비장애인 참가자에게는 별다른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중헌 씨는 일종의 재능기부 차원에서 이번 대회에 참가했고, 아무 대가 없이 김정빈 씨를 돕고자 값진 땀을 흘린 셈이다. 그야말로 아버지를 쏙 빼닮은 아들이다.

이른 조기 퇴직을 선택한 후 윤성진 장로는 고향인 전남 함평으로 내려가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밀농사와 양계를 주력으로 삼으면서, 관련 기술들도 다양하게 익히고 있다.

그냥 천성이 부지런해서만이 아니다. 전서LMTC를 수료하고, 캄보디아 단기선교를 다녀오며 가슴에 싹튼 전문인선교사의 꿈이 인생 2막을 맞이하는 윤 장로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교회 외국인예배부서에서 섬기기 시작한 일 또한 장차 이루어질 선교사역의 비전에 활활 불을 지펴주고 있다.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로 섬기며 학생들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역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사랑과 헌신으로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자동차 정비기술을 가진 큰 형과 기계설비 능력이 뛰어난 둘째 형까지 세 형제가 함께 선교현장을 누비며 전문인 선교사역을 벌이는 게 윤 장로가 꿈꾸는 미래다. 과연 그렇게 윤씨 집안에서 또 다른 아름다운 신앙의 전설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한편 아들 윤중헌 씨는 내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될 패럴림픽, 즉 장애인 올림픽을 준비한다. 세계의 벽은 훨씬 더 높겠지만 동료와 한 호흡으로 다시 한 번 도전할 생각이다. 이번에도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아시안게임 때는 쑥스러워 하지 못했던 기도세레머니를 아버지의 당부처럼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지도 모른다.

며느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아라누나TV’를 통해 아들의 활약상이 중계되는 것을 시청하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인 윤 장로는 그래서 패럴림픽이 개막할 내년 8월을 손꼽아 기다린다. 아마 그때가 오면 윤 장로의 감사노트도 또 새로운 이야깃거리로 풍성하게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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