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언 목사(진량제일교회)

서로 용서하는 것이 복음의 실천입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몬 1:16 상)

김종언 목사(진량제일교회)
김종언 목사(진량제일교회)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어떤 잘못을 해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 오네시모입니다. 또 한 사람은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사람 빌레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두 사람을 화해하도록 중재하는 바울입니다.

먼저 바울을 보면 지금 바울은 갇힌 자가 되어 있습니다. 1절, 9절, 10절에 “갇힌 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번 감옥에 갇힙니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학자들은 첫 번 로마 감옥이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2년간 셋집을 얻어서 그곳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게 됩니다. 그때 이 빌레몬서를 기록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빌레몬은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한 사람입니다. 이 교회가 골로새 교회입니다. 자신의 집을 교회로 사용한다는 것은 집이 좀 크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빌레몬은 골로새 도시에서 그런대로 괜찮은 부자였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라는 도시에서 3년 정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골로새에 있던 빌레몬이 바울을 만나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추측합니다. 즉, 빌레몬은 바울에게 복음을 받았던 그래서 새 생명을 얻었던 복음의 빚진자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용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오네시모입니다.

오네시모는 누구입니까? 빌레몬서 전체를 통해 살펴볼 때 오네시모는 빌레몬 집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오네시모가 주인인 빌레몬에게 큰 잘못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주인에게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입혔든지 아니면 주인의 돈을 훔쳐서 도망을 나온 종이라고 추측합니다. 주인의 재물을 훔쳐 도망한 종은 잡히면 죽임을 당합니다. 당시 로마는 노예들에 의해 경제를 유지하던 때입니다. 그러니 노예는 주인의 재산입니다. 그런데 이 노예가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 갔습니다.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오네시모가 어떻게 해서 로마에까지 도망해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바울을 만난 것입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오네시모에 대해 말하기를 “갇힌 자 중에 낳은 아들”이라고 합니다. 바울과 오네시모가 어떻게 만났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주인 빌레몬에게 손해를 입히고 도망 온 노예 오네시모가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원래 이름이 유익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름값을 못 하고 도리어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복음으로 다시 유익한 자로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유익한 자로 창조된 존재가 우리였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우리가 무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복음으로 우리가 다시 유익한 자로 회복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우리 모두의 샘플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모두 주인의 가슴에 대못을 받고 하나님을 떠난 무익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는 죄인을 살리는 복음으로 인해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은혜입니다.

진정한 용서-용서를 구하는 자

바울은 그런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겠다고 합니다. 주인에게서 도망간 노예, 주인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입힌 노예, 죽을 수 밖에 없는 노예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네시모를 돌려보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그래야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누가 무어라고 해도, 또한 오네시모가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어야만 진정한 용서가 됩니다. 바울이 아무리 용서를 해도, 또한 하나님께 회개를 해도, 당사자인 빌레몬의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대신해서 피해보상을 하겠다고 합니다.(18절)

예!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상대방에게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보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의 출발입니다.

하나님께 회개도 해야 하지만 당사자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용서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용서하는 자

그리고 두 번째는 피해를 당한 빌레몬이 진정한 용서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믿음의 스승이요 사도인 바울은 빌레몬에게 용서하라고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중하게 부탁합니다.(14절) 억지로 하지 말고, 자의적으로 기쁨으로 용서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참 어려운 당부를 합니다.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그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지라”(16절)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읽지만, 당시 빌레몬의 입장에서는 바울의 이 말은 상상하기 어려운 부탁입니다. 도망했고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입힌 노예입니다. 사형을 당해야 하는 노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종처럼 대하지 말고 형제처럼 대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17절에서는 나 바울을 대하듯이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당시 사회질서가 있습니다. 주인이 종을 형제처럼 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여러분! 종을 종으로 대하지 않고 형제로 대하는 것,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이기에 우리도 이것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용서는 이런 것입니다. 억지로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자원하여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그를 죄인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종과 주인의 신분의 벽을 뛰어넘는 행동. 이것은 복음 안에서 가능한 위대한 사랑이며, 용서입니다. 종을 형제처럼 영접해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 역시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오네시모 같은 무익한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십자가가 나를 용서했습니다. 그 사랑으로 나의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으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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