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 목사(성실교회)

서로 협력하는 아름다운 총회를 보여줍시다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행 15:17)

 

김영복 목사(성실교회)
김영복 목사(성실교회)

유대로부터 내려온 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가르친 것(1절)이 발단이 돼 예루살렘 공의회가 개최됐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모인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현상 그대로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변론’(7절) 즉 진지한 논의와 격렬한 논쟁을 통해 아름다운 결론을 도출해 냈습니다.

제일 먼저 베드로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가이사랴의 고넬료 가정이 복음을 받아들인 일과, 그가 비몽사몽간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10:10~16)을 말하므로 이방인을 구원시키는 자신의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밝혔습니다.(11:6~11) 이방인에게 할례의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12절 처음의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라는 표현은 베드로의 변론을 듣는 청중들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논쟁으로 인해 시끄럽던 회의장이 베드로의 변론으로 침묵하게 됐다는 것은 베드로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 기록된 ‘베드로의 마지막 말’이라고 할 때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옹호한 것이 인상적’(Hengel)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어서 바나바와 바울이 어떻게 자신들을 통해 이방인을 구원하시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는지 증언했습니다.(12절) 이 ‘표적과 기사’는 바보에서 바예수가 앞을 보지 못하게 하신 일(13:11), 이고니온에서 행하신 여러 표적과 기사들(14:3), 루스드라에서 평생 걸어 본 적 없는 사람을 걷게 한 일(14:8~10) 등입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유대인 성도들에게 많은 기적을 베푸신 것처럼, 이방인들을 구원하실 때도 동일하게 그들에게 많은 기적을 베푸셨음을 증거한 것이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증언한 후에 이제는 야고보가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길게 발언을 했습니다.(13절)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사도들이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다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됐고(12:17), 예루살렘 공의회를 주관할 정도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가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택하셨는지 베드로의 연설 내용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야고보는 베드로의 이름을 히브리식 옛 이름인 ‘시므온’이라 부르며 베드로가 야고보와 상당한 친분관계에 있다는 것과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베드로의 옛 이름을 알 정도로 서로 잘 아는 유대인이었을 것을 짐작케 합니다. 동시에 야고보가 아람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보기도 합니다.(Schnabel)

야고보는 시몬 베드로와 바울이 경험한 일이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돌보신 것이며, 아모스의 말씀을 통해(9:11~12) 오래전부터 알게 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먼 훗날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짓고,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실 것이라(16절)고 하며, 야고보는 아모스가 예언한 ‘그날’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지금 이방인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예언하신 바를 성취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아모스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18절)

야고보는 이방인 중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 교회에 가입하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자는 규칙을 제시함(19절)으로 베드로의 주장에 공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특정 행동들은 멀리하도록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요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29절)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장시간 논의된 회의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베드로와 야고보의 연설을 중요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론의 내용을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중에서 유다와 실라를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22절)

그리고 즉시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곧바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결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상의 제물을 멀리하라. 그 당시 육류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다음에 시장에서 판매됐습니다.(고전 8:1~13, 10:18~33) 함께 생활하던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우상 제물로 사용된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우상의 더러운 것’(우상 제물, 29절)을 먹는 것을 금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제 이것은 신약성경이 완성되면서 외형적인 모습을 넘어서 내적 신앙 양심의 문제로 승화됩니다.(롬 14:1~4, 13, 17, 22)

둘째, 음행을 멀리하라. 음행은 모든 문화권에 널리 퍼져 있는 매우 흔한 죄였고, 특히 신전 매춘도 흔한 일이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말하는 음행은 레위기의 혼인법에서 금하는 근친상간이나 동성애 같은 금지된 혼인법(레 18:6~20)과 일반적인 습관의 음행을 포함하는 권면입니다. 이것은 이후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음욕을 품는 내적인 마음의 상태에서부터 간음으로 취급합니다.(마 5:27, 28)

셋째와 넷째, 이 둘은 서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목매어 죽인 것을 금하라’와 ‘피를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피 안에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짐승을 죽일 때 목을 비틀어 죽이므로 피가 살코기 안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되므로 그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피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피를 따로 마시는 것은 아닐지라도 결국 피를 먹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를 금지해왔습니다. 성경은 짐승을 먹을 때 피를 먼저 땅에 흘려 버리고 고기만 먹으라(창 9:4, 레 3:17, 7:26~27, 17:10~14)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생명을 귀중히 여겨야 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라고 규정하는 다른 차원으로 발전됐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3:15)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의 율법과 의식에 전혀 친숙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방인 신자들에 대해 인내하고 관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가 그런 규정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방인들은 먼저 신자가 된 유대인들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한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 과정을 보면서 예루살렘 교회가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음을 봅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교회는 일치된 마음으로 지지하면서 회의 결정사항을 가결하고, 이러한 결정을 대표자들을 선정해 안디옥 교회에 전달합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사항은 성령의 권위로 인쳐졌기 때문에 구속력을 가집니다.

동시에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의 관계는 모교회와 지교회의 서로 대등한 관계로, 진리를 확증하고, 서로 협력하는 아름다운 관계 설정을 보여줍니다.

우리 총회도 모든 과정에서 예루살렘 공의회를 본받아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 안에서 진지한 토론 과정을 통해 결정하고, 여기서 결의된 내용을 지교회에 전해야 합니다. 이번 총회가 과정과 질서를 존중하며, 서로를 인정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