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라이베리아 향한 조 선교사
아내 오봉영 선교사와 37년 사역
코와미션 설립해 선교사 지원사역

“은퇴하면 여행도 다니며 쉬엄쉬엄 살자고 아내와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한복음 13장 1절 말씀을 주시는데, 그 말씀을 보면서 펑펑 울었네요. 마지막까지 예수님 흉내라도 내보자, 바울 흉내라도 내며 살자 마음을 다잡았죠.”

조형섭 선교사(GMS·라이베리아)는 2년 반 전 한 기도원에서 마지막까지 라이베리아 선교지를 지키자는 결심을 새롭게 했다. “좋은 나라라면 안 가도 되지만, 라이베리아는 지금도 대다수 사람들이 밥 한 끼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인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조 선교사의 결심이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그와 아내 오봉영 선교사는 사실 라이베리아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조형섭 선교사는 라이베리아에서 교회와 학교 개척, 병원 및 장애인 선교 등 다양한 사역을 감당했다. 조 선교사는 7월 10일 정년 은퇴했으며, 앞으로 GMS 원로선교사로 사역을 이어간다.
조형섭 선교사는 라이베리아에서 교회와 학교 개척, 병원 및 장애인 선교 등 다양한 사역을 감당했다. 조 선교사는 7월 10일 정년 은퇴했으며, 앞으로 GMS 원로선교사로 사역을 이어간다.

1987년 라이베리아에 첫발을 내디딘 조 선교사 부부는 꼬박 37년을 라이베리아에서 살았다. 파송 받은 지 2년 6개월 만에 내전이 터졌을 때, 모든 선교사들이 라이베리아를 떠났다. 조 선교사는 가족만 이웃 국가로 피신시키고 홀로 선교지를 지켰다. 파송교회는 선교비를 안 보내면 그가 귀국할 거라는 생각으로 선교비까지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선교사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때 이후 20년 동안 파송교회 없이 사역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는 안식년을 중간에 포기하고 라이베리아로 들어갔다. 인천공항 관계자들에게 “이미 라이베리아에 내 무덤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에볼라에 걸리면 절대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선교지로 향했다.

“처음 라이베리아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교인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어요. ‘여러분이 어렵고 힘들 때 머리를 들면 반드시 조형섭 선교사가 있을 것이다. 나는 돈도 없고, 파송교회도 없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여러분과 같이 살겠다’ 약속했죠. 감사하게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네요.”

라이베리아가 위치한 서부 아프리카 선교 개척자인 그는 사재를 털어 2021년 1월 코와미션(KOWA Mission)이라는 엔지오(NGO)를 설립했다. 서부 아프리카 선교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서부 아프리카 선교를 돕자는 생각이었다.

“서부 아프리카 17개국에 많을 때는 GMS 선교사가 80명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33명밖에 안 돼요. 은퇴 후에도 선교사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서부 아프리카 선교와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비전은 이후 전 세계 한국인 선교사들을 돕는 소망으로 확대됐다. 코와미션은 현재 전 세계에서 사역 중인 한국인 선교사 40명에게 매월 10만원 이상씩을 후원하고 있다. 코와미션의 비전에 공감한 후원자들도 250명에 이른다. 대다수는 조 선교사의 삶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후원액은 적게는 1만원에서 1억원까지 기탁한 사례도 있다. 설립된 지 2년이 갓 지난 엔지오답지 않은 놀라운 성과다.

조 선교사는 “지금도 도움을 요청하는 선교사 가정이 7가정이 된다. 올해 말까지 총 50가정을 돕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7월말 다시 라이베리아로 들어갈 계획인 그는 “앞으로 한국과 라이베리아를 왔다갔다 할 건데, 작은 기도제목이 있다면 ‘하나님, 라이베리아에 있을 때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하는 것”이라며 “후배들에게 마지막까지 선교지를 지키다 죽는 선배의 본을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조형섭 선교사의 사역 및 후원 문의는 코와미션 홈페이지(www.kowamission.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