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회로서 자긍심 품고 120년 달려온 신앙공동체

한국인여성들이 복음의 씨앗 뿌리며 
자생적인 교회로서 출발한 이력
독립운동가 출신 담임목사들 통해 
애국신앙과 순교신앙 자라나

1906년 한국인 성도들의 자생적 예배를 통해 여수지역 최초의 교회로 출발한 여수제일교회는 ‘민족교회’로서 자부심이 강하다. 사진은 교회당 전경.
1906년 한국인 성도들의 자생적 예배를 통해 여수지역 최초의 교회로 출발한 여수제일교회는 ‘민족교회’로서 자부심이 강하다. 사진은 교회당 전경.

‘최초신자 성명 주점(여 기생) 콩케이(술장수) 박산 함씨(떡장수) 박학업-현 생존자 86세.’

1956년에 작성된 여수제일교회 연혁은 이런 충격적인 기록으로 시작한다. 도저히 교회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들이 신앙공동체를 시작한 주역이었던 것이다. 특히 ‘주점’이라는 성명에 기생이라는 직업으로 기록된 인물, 본명이 김암우인 그녀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성천 원로목사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라합이라는 인물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여리고 기생이었던 그녀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고, 심지어 그녀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올라가있으니 교회사에서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될 인물인 셈이지요. 여수교회사에서 김암우 여사도 바로 그런 존재”라고 설명한다.

1930년대 여수제일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 사진 오른쪽 원 안의 인물이 조의환 목사이다.
1930년대 여수제일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 사진 오른쪽 원 안의 인물이 조의환 목사이다.

부산 동래에서 술집을 운영하다 호주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영접하고 회심한 그녀는 전남 여수로 이사해, 새로운 터전에서 열심히 전도하며 여러 신앙동반자를 얻었다. 그들이 바로 술장수 콩페이, 떡장수 박산 함 씨, 그리고 박학업 등이었던 것이다.

이 여인들이 1906년에 여수시 군자동의 초가 4간에서 처음 예배를 시작한 일이 오늘날 여수제일교회의 기반이 되었다. 비록 자랑할만한 신분이나 과거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 믿음만큼은 진심이었다. 배를 타고 목포까지 찾아가 며칠씩 사경회에 참석하고 돌아올 만큼 말씀을 향한 열의가 대단했다.

정식 교회로 설립된 것은 1910년의 일이었다. 당시 영수 신분이었던 조의환이 2월 5일부터 예배를 인도했고, 그 때부터 여수교회 혹은 서정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성도들과 함께 교회의 기반을 닦은 조의환은 이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제3대 담임목사로 돌아온다.

여수제일교회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순교자인 윤형숙 전도사의 묘역.
여수제일교회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순교자인 윤형숙 전도사의 묘역.

미국남장로교 순천선교부가 설립된 것이 1913년 4월의 일이니, 서양선교사들보다 훨씬 앞서 한국인들 스스로 일으킨 신앙공동체로서 여수제일교회 역사가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가진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민족교회’라는 여수제일교회의 정체성과 자긍심은 비단 출발선상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 역대 담임목사들의 면면부터가 남다르다.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곽우영은 장로시절 목포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출신이었으며, 1922년 순천노회 조직에도 결정적 공헌을 한 지도자였다.

예배당 건축 중 순직한 김선영 목사의 장례식 모습.
예배당 건축 중 순직한 김선영 목사의 장례식 모습.

제4대 김순배 목사 또한 광주숭일학교 재학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른 경력 때문에 ‘반일목사’로 지목되었던 인물이었으며, 여수제일교회 시무 중이던 1938년에도 일제가 금하는 말세 재림에 대한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두 번째 수난을 당했다.

뒤를 이어 제6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상두 목사 또한 김순배 목사와 같은 이유로 체포되어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른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히 교회 역시 일제의 탄압대상이 되었지만 그 힘든 시절에도 여수제일교회는 애국부인전도회를 조직해 전도에 힘썼고, 특히 박재수 장로의 경우에는 신사참배 문제로 수감되면서까지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해방을 맞았다.

여수제일교회 집사로 섬기다 전도사 사역까지 감당하게 된 윤형숙 씨가 광복을 맞은 감격은 남달랐다. 그녀는 광주 수피아여학교 재학 시절 만세운동 선봉에 섰다가, 일제의 칼날에 태극기를 휘두르던 팔 하나를 잃으며 ‘혈녀’라는 별명이 생긴 사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장개혁 소속 시절인 1989년 정성규 목사가 총회장에 오른 제73회 총회 당시 풍경.
예장개혁 소속 시절인 1989년 정성규 목사가 총회장에 오른 제73회 총회 당시 풍경.

그녀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역을 감당하고 사람들을 섬기며 큰 신망을 받은 인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6·25라는 또 다른 격동기에 순교하고 만다. 그 순교의 길에는 여수고등학교 교감으로 재직 중이던 같은 교회 김은기 집사도 동행했다.

두 순교자의 이름은 제104회 총회의 결의를 통해 정식으로 총회순교자명부에 등재됐으며, 이를 기념하는 예배가 당시 총회순교자기념사업부(부장:박요한 장로) 주최로 2023년 5월 13일 여수제일교회에서 열리기도 했다.

한편 여수제일교회는 교단 총회장을 지낸 제7대 손치호 목사, 제9대 최성원 목사, 제12대 정성규 목사 등과 51인 신앙동지회 일원으로 한국장로교회가 보수신앙을 지키는데 일조한 제8대 박종삼 목사 등이 강단을 이어 지키며 성장해왔다. 120주년을 목전에 둔 여수제일교회에게 ‘민족교회’로서 사명은 여전하다.

“아름다운 순교신앙과 애국신앙 이어갑니다”

여수제일교회 김성천 박응진 목사 

“선교사들이 아니라 한국인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민족교회라는 자부심, 말씀의 영성이 살아있는 교회이자 순교신앙을 계승하는 교회로서 자긍심이 큰 공동체입니다. 그 유산과 정신이 먼 후대에까지 잘 계승되기를 바랍니다.”

최근 여수제일교회 리더십을 이양한 김성천 원로목사와 제14대 박응진 담임목사의 마음은 한결 같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자산을 당대에 가치 있게 활용하고, 다시 미래세대에 소중히 전수하는 것을 두 사람 모두가 중차대한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단지 담임목사로 역할만이 아니라 겨레의 지도자로, 총회의 수장으로 생명을 걸고 헌신하신 선배들의 뒤를 이어 20년 동안 여수제일교회 강단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긴 여정에 동행해주신 하나님과 동역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수제일교회 강단을 연이어 지키는 김성천 원로목사(오른쪽)와 박응진 담임목사는 교회의 역사적 자산들이 목회에 훌륭한 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여수제일교회 강단을 연이어 지키는 김성천 원로목사(오른쪽)와 박응진 담임목사는 교회의 역사적 자산들이 목회에 훌륭한 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김성천 원로목사는 여수제일교회의 강단을 짊어지는 엄청난 부담을 잘 감당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교회를 처음 일으킨 김암우 여사와 초창기 성도들의 열정적인 신앙 이야기, 순교자 윤형숙 전도사와 김은기 집사의 행적 등이 김성천 목사의 부단한 탐사과정을 통해 상세하게 밝혀질 수 있었다. 교회 110년사의 발간과 순직자 김선영 목사의 추모사업 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공로이다.

“그분들이라면 우리 시대에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셨을까를 고민하면서 제 목회의 길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열매들 중의 하나가 청은선교회를 세워 수많은 미래자립교회 목회자들과 은퇴목사들 그리고 선교사들을 돕는 일이었고, 여수해양엑스포를 계기로 전 세계인들에게 여수지역 교회들의 순교신앙을 널리 알리는 사역을 전개한 일이었습니다.”

후임자인 박응진 목사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인 자신의 좌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여수지역 최초의 교회이자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교회로서 더욱 건강하고 신실한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일과, 지역의 농어촌교회 및 낙도교회들을 돌보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목회에 임할 것이라고 박 목사는 다짐했다.

“3년 후면 우리 교회가 설립 120주년을 맞이합니다. 단지 기념행사를 치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더 높은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고자 합니다.”

박 목사가 생각하는 도약의 준비란 예배 말씀 기도 등 신앙의 본질과 기본기를 더욱 충실히 다듬어가는 것이고, 한 영혼 한 영혼을 소중히 돌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순교자들을 비롯한 역대 공로자들의 역사전시 공간을 설치하는 방안과 학술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방안도 궁리 중이다. 조만간 총회역사위원회를 통해 사적지 지정이 이루어진다면 여수제일교회의 한 차원 높은 도약에 큰 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 또한 갖고 있다.

“한국교회의 위기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어쩌면 여수제일교회가 간직한 순교신앙과 애국신앙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의 신앙자산을 전국교회와 공유하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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