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본 50년은 뿌리를 박고 성장의 기틀을 다진 세월이었다. 개척자들의 눈물과 땀이 곳곳에 묻어 있었고 허급지급 달려온 세월이 때론 매끄럽지 않은 면도 보였다. 다가오는 반세기, 시작보다는 성숙한 자세로 디자인도 해보고 우리 모습을 그에 맞춰 보기도 한다. 좌담회는 이런 의미의 반영이다. 남전
우 목사(JOY선교회 대표) 고직한 전도사(사랑의교회 젊은이사역 담당) 전병욱 목사(삼일교회)가 참석했다. <편집자주>

◇90년대를 이야기한다
고직한 전도사=90년대 들어 전반적인 학생운동이 퇴조하고 캠퍼스도 달라졌다. 복음주의 학생운동 역시 침체 경향이 나타난다. 변화는 곧 기회를 의미하고 그에 따른 역할이 요구되는데 선교단체들의 경우 학원복음화라는 관점으로 이 변화에 직면해야 한다.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선교단체들의 뒷받침 속에 당선된 사실은 복음주의 계열의 건전한 학생운동이 환영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복음전도란 원칙에서 운동단체들이 준비돼 있느냐 하는 점인데 대답은 부정적이다. 과거엔 교회 다니는 학생들이 선교단체로 연결되고 그들을 양육하는 데 그쳤다. 90년대의 상황에 적합한 전도운동이 개발돼야 한다. 희망적 현상은 최근 5-10년간의 변화를 보면 과거와 비교해 기도의 열망이 커지고 운동의 범위가 세계선교 또는 다른 단체에까지 확산되어 중보기도운동으로 나타난 사실이다. '민족 복음 역사'대회가 '리바이벌'대회로 변경된 점 역시 희망적 신호로 보여진다.

전병욱 목사=기연, 즉 기독교연합회 활동이 각 학교에서 활성화 하고 있다는 점 또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운동세력이 선교단체로부터 기연으로 옮아간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교회성장에 있어서 마케팅의 원리가 조금씩 먹혀드는 현상이 보인다. 대형교회 또는 어느 유명한 선교단체에 학생들이 몰리기 보다는 개인의 욕구에 따른 선택이 불거진다는 얘기다.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이제 단체의 성장에만 몰두해선 안되며 개인들의 성장을 오버랩 시키는 형태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남전우 목사=과거 복음의 통합성, 그러니까 정치투쟁과의 갈등 측면이 많았는데 이제 이 부분은 많이 약화됐다. 이런 측면에서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기회를 얻은 셈이다. 동시에 기회를 선용하지 못할 경우 도리어 위기요인이 될 것이다. 실제로 한국교회 전체와 더불어 학생운동 단체 또한 문화의 세속주의적 경향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따라서 사회를 연구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도출하는 전문연구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전을 이야기한다
고 전도사='성서한국·선교한국·통일한국'의 비전은 모든 사역자들이 품어 온 비전이다. 이 비전으로 어느 단체나 하나가 됐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이론화하고 프로그램화하는 연구작업이 확산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종합적인 복음주의 학생운동 토양을 재정비 할 필요성도 있다. 각 단체들의 원심력도 살리면서 적당한 구심력을 갖는 측면으로 새로운 판짜기를 고려해 야 한다.

남 목사=선교단체들이 제도화되고 이미 짜여진 구조속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것은 운동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런 시대에서 역사의 진보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사회에 빛이되려는 도전세력을 통해 이뤄져왔다. 지금 젊은이들 가운데 그런 그룹들이 나와야 한다. 세속화에 대응해서 복음의 능 력을 나타내는 사람, 전인적인 윤리성과 함께 통합성을 가진 새로운 운동력 의 돌출이 필요하다.

전 목사=캠퍼스에서 복음주의 학생운동 세력이 물위로 떠오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해야 하는가'하는 문제에 있어선 시원하게 대답 하는 사람이 없다. 내면적인 파워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진보적 운동그룹으로부터 기회주의자처럼 보인다.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비전제시는 지도자들의 몫이다. 이것은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지만 젊은이들에게 소망을 심는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

◇교회와의 관계를 말한다
고 전도사=과거와 비교해 학생운동에 교회역할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후원자 수준에서 전도와 양육, 제자화사역에 걸쳐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결국 파라처치의 역할과 지역교회의 역할에 차별이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이는 서구의 파라처치운동 토양과 우리나라의 그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서구에선 대학에 간다는 게 지역교회와의 분리를 의미했지만 우리는 연고가 있는 또 다른 모교회로의 이동에 불과하다. 역할분담이 어려웠던 원인이다. 그러나 이제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흐름은 두개의 축과 두개의 바퀴로 가야
한다. 

남 목사=양자의 역할을 구분짓고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는 건 대세다. 이렇게 가기 위해선 많은 연구와 합의된 대안들이 필요하다. 비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중요한 건 모든 것이 비전을 잣대로 평가돼고 수정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또 비전이 구체적 전략이 아닌 이상 이런 과정은 필요하며 이에 따라 전략이 세워지고 구체성을 띠는 가운데 가속도 붙는 법이다.

전 목사=과거와 달리 교회가 선교단체의 장점들을 많이 소화해냈다. 최근 에는 학생들이 선교단체를 떠나 교회로 옮기는 현상도 보일 정도다.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건강한 교회가 많이 나와야 한다. 학생들이 특정한 교회로만 집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유능한 이들 젊은이에게 일감을 제시해야 한다. 그들은 일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일이란 전도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교회는 선교단체 출신 젊은이들을 일꾼으로 만드는데 실패했다. 장교를 사병화하는 셈이었다. 나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의 일꾼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선교단체 출신의 젊은이들이 아닐까 생각도 한다. 모레시계 세대들 이들이 잘 돼야 교회는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이 결혼을 하기까지 교회가 꾸준히 품어줘야 한다.

고 전도사=캠퍼스 입양운동의 확산은 감사한 일이다. 교회의 선교단체에 대한 시각이 크게 좋아졌다는 의미다. 이것은 선교단체의 노하우가 교회에 많은 유익을 끼쳤고 목회현장에서도 선교단체의 시각이 적용됨으로써 좋은 결과를 가져온 데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교단체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교회는 선교단체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고 교회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을 탈피하면서 교회와의 관계를 섬기는 동역자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면 하는 점이다.

◇평신도운동을 말한다
남 목사=한국의 기독청년운동이 제3세계의 선두주자로 그들을 리드해가는 입장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선교모델 제시가 필요하다. 어느 시대나 한 운동의 주도역할을 담당한 건 청년들이다. 학생운동이 그 통로가 돼야 한다. 자원자들이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선교의 전략이 도출돼야 한다. 단기선교운동도 정리과정을 거쳐 결집된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고 전도사=평신도 지도력의 향상은 선교단체의 주목할 만한 공헌이다. 기윤실을 비롯해 창조과학회 역사연구소 대학설립동역회 등은 석사 박사급들의 평신도운동을 잘 보여준다. 이와 함께 직장선교문화가 학원복음화의 연장선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직장성경공부모임이 활발한 데 이들이 수련회 등에 수천명씩 모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선교단체 출신들이다. 일선에서 직장선교를 위해 승진까지 포기한 사람들이 생기고 있을 정도다.

전 목사=사람을 키워낸 교회, 인물을 배출해 낸 단체만이 영향력을 지속시킬 수 있다. 특정교회의 대학부 출신이나 특정 선교단체의 인물들이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걸 본다. 집중적인 인재 양육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평신도의 역량을 최대화하기 위해 교회가 할 일은 목회자 중심의 비전도 중요하지만 평신도들의 비전에 맞춘 목회를 하면서 은사계발을 돕고 개인성장을 중시해야 한다.

◇문화운동을 생각한다
고 전도사=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신학을 개척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문화운동은 자본이 들어가는 영역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의 안목을 넒히는 일이 필요하다. 문화운동을 캠퍼스에서 벌이던 친구들이 지금 졸업 후 제각기 엉뚱한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 척박한 토양을 바꿔야 할 것이다.

남 목사=역사진행과정을 보면 사상과 종교적인 것이 앞서고 그 다음에 예술이 뒤따른다. 이렇게 볼 때 한국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사상적 투쟁으로 시작해서 이제 꽃을 피워가는 시점이다. 토양이 준비되지 않았다기 보다는 대중적인 뿌리를 만드는게 우선돼야 한다. 이와 함께 대학가의 부정적 문화운동에 대항하는 대안문화의 제시도 고려해야 한다.

전 목사=문화는 젊은이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출판현장을 보면 우리의 저술활동이나 창작활동이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 금방 드러난다. 물론 독서수준에도 문제는 있으나 보다 왕성한 창작활동이 보장돼야 하고 국내 필진들의 개발을 통해 수준 높은 출판물들이 많이 보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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