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년설이냐 무천년설이냐 아니면 후천년설이냐의 문제는 성경, 특히 요한계시록 20장 1절부터 6절의 해석상의 이견에서 비롯된다. 총신대학교에서 11월 15일 「개혁주의 종말론 세미나」가 열렸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주제발표를 한 목창균(서울신학대학교·조직신학), 최갑종(기독신대원·신약신학), 한정건(고신신대원·구약신학) 세 교수 역시 「천년기」에 대한 논쟁이 성경해석상 차이임을 인정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이 점이 쉽게 간과된다. 성경해석상 셋 가운데 어느 「설」도 스스로를 완전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에서는 천년기 논쟁이 교리적 정죄의 빌미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마당에 총신대학교에서 무천년설 입장에 있는 교수들과 역사적 전천년설 입장에 있는 교수들이 한자리에서 신학적인 토론을 벌였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의미있는 「사건」.
총신대학교대학원원우회(회장: 정재돈 목사)는 『한국 교회 종말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이번 세미나를 주최했다고 밝혔다. 말대로라면, 한국 교회에는 종말론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다.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기성 교회의 강단에서마저 세대주의가 표출되는 것으로 봐서 원우회의 세미나 취지에 설득력이 있다.
원우회장 정재돈 목사는 이번 세미나에 일종의 사전 정지 작업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전천년설이든 무천년설이든 한쪽으로 몰아가는 의도같은 것은 없었다는 얘기다. 원우회는 주제발표자 선정에서도 그런대로 균형을 잡았다. 최갑종 교수(계시록20:1-6절의 해석과 무천년설)는 무천년설을 대변했고, 한정건 교수(역사적 전천년설에 근거한 무천년기설에 대한 비판)는 역사적 전천년설을 대변했다. 논평자 유상섭 교수의 지적처럼,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후천년기를 대변하는 주제발표가 없었다는 점. 유상섭 교수는 목창균 교수(목 교수는 스스로를 후천설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힌다)가 소개한 후천년설이 「오울드 버전」이라며 1980년대 이후 후천년설을 새로운 신학적 지평에서 세우려는 흐름이 있다고 지적하고, 특히 목 교수의 소개에 후천년설이 한국 교회에 어떤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 작업이 없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 특히 한국 장로교회의 천년기 논쟁이 대부분 무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기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제발표에서 후천년설을 소개만 한 것으로도(목창균·후천년설이란 무엇인가)도 큰 흠은 아닐 것이다. 주제발표와 함께 강평과 패널토의에서도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은 최소한 형식적 균형미는 유지했다.
무천년설-최갑종 교수
『계시록 20장 1절-20절의 해석과 무천년설』(일부)
오리겐, 어거스틴, 칼빈, 카이퍼, 바빙크, 벌코프 등의 뒤를 이은 무천년설 주장자들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타나는 『천년』을 예수님의 초림으로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 일종의 상징적이고 영적인 숫자로 해석하며, 천년왕국을 예수님의 재림후에 이땅에 펼쳐질 지상적인 왕국으로 보기보다, 오히려 오히려 예수님의 초림, 십자가와 부활, 승천 등을 통하여 죄와 사탄의 세력을 근본적으로 멸하시고, 만유의 『주』로서 높아지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와 온 세상을 다스리는 구속사적이며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로 본다. 그리고 장차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사탄의 세력이 완전히 격파당하고, 신자와 불신자의 시간적 간격없이 그 때 모든 죽은 자들이 일시에 부활하게 되며, 이어 이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과 구원을 결정하고 그런 다음 영원한 신천지가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계시록 20:1-6에 대한 문자적 해석을 선호하는 전천년설주장자들에 따르면, 신약의 성도들은 앞으로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시장의 천년왕국과 함께 영원한 신천지를 이중적으로 기다리고 있지만, 반면에 계20:1-6에 대한 상징적 혹은 영적인 해석을 선호하는 무천년설주장자들에 따르면, 신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이땅에서 이루어져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면서, 또한 장차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영원한 신천지를 아직 기다리고 있다.
역사적 전천년설-한정건 교수
『역사적 전천년기설에 근거한 무천년기설에 대한 비판』(일부)
전천년기설은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의 묘사를 19장에 나타나는 주님의 재림사건 이후에 연속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20장에 용이 가두이는 것은 재림 이후에 있을 사건이며, 주님의 통치를 영적인 통치로 보지 않고 재림 후에 있을 예수님의 실제적인 통치로 생각한다. 이 주님이 통치하는 왕국에 성도들이 살아서(육체적인 부활) 참여한다. 그 후에 사단이 잠시 놓임을 당할 것이고, 왕국에 있던 사람들도 이 사단의 유혹에 반응을 보이게 되며, 최후의 대반란(곡과 마곡의 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모든 악을 심판할 것이다.
성경의 원리에서 무천년주의자들은 예언구절들을 영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그 극단적인 반대편에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은 보다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반면, 전천년주의자들은 가급적 여자적으로 해석한다는 원칙을 취한다.
무천년주의자들은 계시록 20장을 19장과 단절시켜, 19장은 재림의 모습이지만 20장은 초림의 사건에서 시작하는 교회 전체의 기간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20장 본문의 여러요소들에서는 19장 이후의 사건들임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들이 있다. 그외의 여러 구절들을 미루어 우리는 계시록 20장은 재림이후에 있을 왕국이며, 따라서 역사적 전천년기설이 가장 타당한 성경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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