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 서거…세계 정교회·성공회·개신교회 애도 표시


가톨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했다. 26년이라는 역대 교황 가운데 세 번째로 길었던 재임 기간에 그가 남긴 족적은 가히 세계적이었고 세기적이었다. 그처럼 많은 나라를 찾아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환영을 받은 인물도 드물었듯이, 그의 죽음에도 세계는 애도했다.
정교회와 성공회, 그리고 개신교회를 망라한 세계 기독교 공동체의 거의 모든 전통들도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를 애도하고 그의 업적과 공로를 기렸다.
가톨릭교회와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도 긴장 관계에 있는 정교회의 최고 지도자 에큐메니컬 총대주교는 4월 2일 애도 메시지에서 ‘자매 교회’ 수장의 서거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세계 정교회의 명예 최고 지도자인 ‘에큐메니컬 총대주교’이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의 수장인 바돌로메오스는 4월 2일 성명을 통해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에 애도를 표하고 그를 교회일치와 공산체제붕괴에 기여한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
1054년 대분열로 서방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로 갈라선 두 교회는 지난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와 에큐메니컬 총대주교 아타나고라스의 화해의 만남으로 역사의 묵은 갈등은 청산했지만 공산독재 붕괴 뒤 동유럽 국가에서 관할권 다툼을 벌이면서 새로운 마찰을 빚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 즉위 초부터 자신의 조국인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을 잇달아 방문하자 정교회 유산이 강한 이들 나라의 정교회는 노골적인 불만과 강한 의구심을 보여 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에큐메니컬 총대주교는 두 교회의 공식 조우와 화해 40주년을 맞아 지난해 바티칸에서 만남의 자리를 갖기도 했다.
러시아정교회 수장 알렉세이 2세 ‘모스크바와 전체 러시아의 총대주교’도 애도 메시지를 발표했다. 동유럽 정교회에 대한 실질적인 관할권을 행사해온 러시아정교회는 교황의 서거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임 기간 동안 가톨릭이 동유럽 정교회권을 선교지로 삼은 것에 대한 지적도 빼지 않았다.
알렉세이 2세 총대주교는 4월 3일 바티칸 추기경단 대표 조셉 라칭거 추기경 앞으로 보낸 애도 메시지에서 “중병에도 불구하고 생의 최후의 날까지 그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으며, 자신의 양떼를 용기 있게 돌보았다”며 애도를 표했다. 알렉세이 2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될 로마가톨릭교회에 “우리 교회들 사이에 상호존중과 그리스도인의 형제애의 관계가 갱신되기를 바란다”는 기대의 말을 남겼다.
이번 애도 메시지에서 알렉세이 2세는 요한 바오로 2세를 가리켜 ‘로마의 교황’(Pope of Rome), ‘고대 로마 교구의 수장’(Primate of the ancient Roman See)이라는 용어를 사용,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정교회의 정서를 드러내기도 했다.
세계 성공회 최고 지도자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4월 3일 요한 바오로 2세의 삶과 사역을 기리는 조문을 발표했다.
이 조문에서 윌리엄스 대주교는 요한 바오로 2세는 부활절부터 성령강림절 사이 50일간의 ‘부활절 계절’에 “정직과 용기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며 그의 마지막 며칠을 “살아있는 설교”라고 말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나치와 소비에트 공산체제 치하에서 겪었던 경험이 요한 바오로 2세로 하여금 교황직을 강인하게 수행할 수 있게 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또한 교황이 반유대주의를 조장하는 등 “교회의 과오를 기꺼이 인정했다”며 찬사를 보냈다.
윌리엄스 대주교는 지난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가 마이클 램지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선사한 반지와 요한 바오로 2세가 그에게 선사한 십자가 흉패를 착용하고 교황 장례식에 참석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도 중앙위원회 의장과 사무총장 명의의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아르메니아교회 가톨리코스(대주교)이자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 의장인 아람 1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근대 세계 교회사에서 두드러진 인물로 남을 것”이라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들의 삶 가운데서 살아있게 하기 위한 그의 쉼 없는 노력과, 도덕적 가치가 인류 사회를 지도하는 원리가 되게 하기 위한 그의 불굴의 선지자적 증언과, 다양성 가운데 화해의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다른 종교들에게 보여준 그의 개방성과, 그리고 정의와 인권과 자유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지지가 그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예외적인 인물로 만들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코비아 사무총장은 4월 3일 발표한 공식 조문을 통해서 거듭 교회일치와 세계의 평화와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기리는 한편 교황 재임 초기인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교회협의회 본부를 방문했던 일에 회상하기도 했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는 제네바 에큐메니컬 센터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기독교의 완전한 친교를 위해 기도했다.
낙태와 안락사 문제 등에서 교황과 한 목소리를 보여 온 미국기독교연합도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를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최대의 ‘프로-라이프’ 단체로 자임하는 이 단체는 요한 바오로 2세를 “생명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한 20세기의 거인”이라고 칭송했다.
4월 2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 단체는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가렛 대처 총리와 함께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리는 데 핵심의 역할을 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단체는 요한 바오로 2세에 앞서 최근 사망한 테리 시아보 사건을 거론하며 요한 바오로 2세를 “태아와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해 싸운 위대한 투사”로 불렀다.
(사진설명: 6일 필리핀 마닐라성당에서 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위한 레퀴엠 미사에서 안토니오 프랑코 대주교(왼쪽)가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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