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훈 목사(성문교회)

우리의 소중한 자녀와 영적 은혜, 영적 도전을 같이 누립시다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신 31:12)

고동훈 목사(성문교회)
고동훈 목사(성문교회)

초대교회는 온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가정이 중심이었습니다. 지역에서 큰 집을 지닌 성도가 집을 개방하고 다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120명이 모여 기도했던 마가 요한의 집 다락방, 빌립보의 자주 장사 루디아의 집, 가이사랴에서는 백부장 고넬료의 집이 교회가 됐습니다. 초대교회는 오늘날과 같은 어린이 주일학교가 없었습니다. 그럼 어린이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렸을까요?

4세기 수리아의 문헌인 <사도헌장>에 보면 여러 세대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책에는 특별히 예배를 드리러 모인 성도들의 자리를 배치하는 집사들의 의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면 자기들끼리 앉게 하라. 자리가 없다면 똑바로 서 있게 하라. 그러나 연로한 자들은 순서대로 앉게 하라. 서 있는 어린이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데리고 가게 하라… 집사가 자리를 배치하여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자기에게 맞는 자리로 가고 입구에 앉아 있지 않게 하라.”

원래 초대교회 예배는 온 가족이, 전체 공동체가 함께 드렸습니다. 자리 배치가 중요했고 어르신들이 앉는 자리와 젊은이들이 앉는 자리, 그리고 자녀들을 데리고 앉는 자리를 배치해 온 가족과 공동체가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처럼 어른과 아이들이 나뉘어 예배를 드리고 주일학교를 하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어린이 주일학교는 영국의 신문 발행인이었던 로버트 레이크스가 당시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이 길거리에 방치되고 범죄의 온상이 되자 이를 예방하기 위해 1780년 길거리의 아이들을 모아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결국 어린이들을 주일학교로 분리해서 예배를 드린 것은 근대에 들어서 교회들이 교육학적 관점에서 연령대별로 필요한 교육을 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이 연령대에 맞도록 알아듣는 말로 말씀을 듣게 하고 공과 교육을 하고 프로그램을 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이고 좋은 신앙 교육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주일학교가 아이들에게 좋은 기독교 교육은 됐지만, 아이들을 진정한 예배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어른들과 같이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떠들고 산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그 안에서 아이들은 예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배를 가르치지 말고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요한 절기와 예배에 반드시 자신의 어린 자녀를 참석시켰습니다.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신 31:12)

이 말씀은 면제년 초막절을 지키는 모임의 명령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이 예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했는데, 여기에는 어린아이들도 포함됐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율법이 선포될 때 그 자리에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집회에도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모였습니다. 역대하 20장에 보면 암몬과 모압의 연합군이 남유다를 정복하려고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데, 여호사밧 왕이 온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고 금식기도를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대하 20:12~13)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에서 함께 금식기도하며 집회를 할 때 그들의 어린 자녀들을 빼지 않았습니다. 부모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기도하는 것을 본 자녀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그 어린아이들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럼에도 아이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이렇게 기도하는구나를 깨닫지 않았겠습니까?

이 외에도 에스라 시대의 회개운동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을 함께 데리고 참여했고(스 10:1) 느헤미야의 성벽재건 낙성식에도 어린 자녀들과 함께 참여함으로 예배를 경험하게 했습니다.(느 12:43)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녀들과 영적인 은혜와 영적인 도전을 늘 같이 누리는 것입니다.

가르쳐서 참 예배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기도하는 모습, 예물을 구별해 드리는 모습, 찬양하고 예배에 은혜를 받는 모습을 보며 예배를 알게 됩니다. 아이들은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고 부모의 예배 모습을 보며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경험함으로 참 예배자로 세워지고 예배가 무엇인지를 체득하게 됩니다. 예배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주일학교와 다릅니다. 예배는 교육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제사입니다. 교육적인 목표가 아니고 영적인 목표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배는 이론으로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경험으로 습득합니다.

참 예배하는 부모가 참 예배하는 자녀를 만듭니다

필자의 마음속에 하나 확실하게 있는 것은 부모님을 따라서 예배를 드리고 또 여러 부흥집회에 따라갔던 기억입니다. 어른들의 예배는 어린 제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과 찬양으로 수두룩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 찬양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이 똑똑히 기억납니다. 어린 시절 아버님의 손을 잡고 새벽기도회에 한 시간을 걸어가면서 제가 뭘 배웠겠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예배란 이런 거구나.’ 말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의 예배를 사모하는 모습을 보고 경험하고 체득합니다. 이것이 가장 강력한 예배자로 자녀들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부모가 예배자가 되면 아이들도 예배자가 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션사이드 연합개혁교회 담임목사인 대니얼 R. 하이드 목사는 매주일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목회로 유명합니다. 하이드 목사는 말합니다. “당신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예배에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예배가 따분하거나 아이들 수준에 맞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당신이 거룩한 예배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참 예배자로 만들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부모 자신입니다.

예배는 몸에 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예배에 참여해 부모들의 예배자로서의 모습을 보며 예배를 배우게 됩니다. 가정예배를 통해, 부모와 함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아이들은 예배자가 되어갑니다. 바라기는 한국교회 믿음의 가정들이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며 부모가 먼저 참 예배자가 돼 자녀들 또한 참 예배자로 세워지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