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봄 들어 만발했던 꽃들이 지면서 새롭게 돋아나는 푸른 잎의 색깔이 환상적이다. 봄꽃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진다는 것. 내가 사는 아파트나 예배당 주변에 핀 벚꽃과 목련, 철쭉 등이 그것을 일깨웠다. 같은 나무라도 꼭 같은 때에 꽃이 피진 않는다. 햇빛을 많이 받는 곳과 적게 받는 곳의 개화 시기는 차이가 있다. 그러다 보면 옆 나무의 꽃이 질 무렵에야 꽃이 피기도 한다. 환경에 따라 일찍 또는 조금 늦게 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핀 순서대로 꽃이 진다. 그 덕에 꽃을 보는 즐거움이 길어지는 것 같다.

예배당 정문 앞의 두 벚꽃이 그런 확연한 대조를 보여주었다. 오른쪽 나무는 눈부실 정도로 환한 꽃을 일찍 피웠다. 그런데 그 왼쪽 나무는 꽃망울만 올라왔을 뿐이다. 저러다 피지도 못하고 가려나 싶더니 먼저 핀 꽃이 지고 푸른 잎에 돋아날 때쯤 활짝 폈다. 이 두 나무의 푸른 잎과 환한 꽃의 대비가 눈에 어른거린다.

어디 꽃뿐이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은가? 그러니 아직도 꽃을 못 피웠다고 너무 슬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늦게 피지만 그만큼 늦게까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할 수 있지 않은가. 다른 나무의 꽃이 지고 잎이 푸를 때, 늦게 핀 꽃이 더 눈에 들어오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난 대학원 졸업 후 장교로 40개월 군 생활을 마친 후, 2년을 헤매다 신학공부를 했다. 그래서 38세에야 목사가 되었다. 눈물을 쏟는 감격이 지금도 기억난다. 늦깎이 목사였지만 이듬해 목사 안수 후 1년 만에 지금의 교회로부터 청빙을 받았다. 생각도 하지 못한 산정현교회 강단에 오른 지 벌써 29년이다. 굳이 표현한다면 난 분명히 늦게 핀 꽃이다. 그런 나는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피어있는 것 같다. 아니 이제야 꽃이 만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향기도 아직 괜찮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물론 그 꽃이 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꽃이 지더라도 또 푸릇푸릇 잎이 돋을 것이다. 나무가 살아만 있다면 꽃은 꽃대로, 푸른 잎은 그것대로 또 앙상한 가지는 그것대로 아름다운 것이다. 내 인생 역시 그럴 것이라는 위안을 스스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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