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근시였던 내 눈, 책은 잘 보여도 멀리 있는 사물은 정확하게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안경을 사용했고 그 후 사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안경 착용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달랐다. 처음 안경을 사용하면서 마치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먼 거리의 글씨나 사물이 매우 잘 보이는 것이다. 노안이 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란다. 심한 근시라면 노안이 와도 멀리 있는 사물은 잘 안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눈이 조금 안 좋은 정도의 근시인 경우, 노안이 왔을 때 책 읽기는 쉽지 않아도 멀리 있는 것들이 잘 보이게 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먼 거리의 사물이 잘 보이는 이런 현상을 경험하며 욕심이 생겼다. 먼 거리의 사물만이 아니라, 인생을 보다 멀리 보는 통찰력까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사실 70세 가까이 살다 보니 정말 젊은 시절에 보던 것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은 든다. 좀 더 멀리 그리고 넓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험과 경륜의 힘일 것이다. 사실 원래부터 눈으로만 세상을 보진 않았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당장 눈앞의 것만 계산하지 않으면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시야도 넓어져 더 멀리까지 보이는 것 같다.

진작 그렇게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보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아옹다옹하던 젊은 날이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안경을 끼고도 못 보던 그 아쉬움. 나이 들며 시력이 더 좋아질 리는 없다. 그러나 생각은 깊어지고 더 먼 곳에 시선을 둘 수는 있는 것이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나이 들어 눈이 보이지 않으니 코앞에 앉은 녀석이 큰 아인지 작은 아인지 조차 헷갈렸다. 그래서 심각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던가? 그런데 야곱은 나이 들어 눈은 안 보여도 그 앞에 앉은 아이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리고 열두 아들의 미래를 선지자적 안목으로 예언했다.

그렇다. 눈이 아니라 영감이다. 난 영적 분별력과 통찰력을 가질 나이가 된 것이다. 나이 듦의 유익이랄까? 진작 멀리 보고 더 깊이 분석했더라면 조금 더 잘 살았을 텐데 싶어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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