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육 전문가들 '회복적 생활교육' 강조
"처벌 강화 아닌 관계 형성 예방 및 회복으로"

잇따르는 학교 폭력 문제에 정부가 가해자 징계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근절 대책을 예고한 가운데, 기독교 교육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가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며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예방 및 회복 과정의 필요성을 제언한다. 사진은 기독대안학교인 이야기학교 재학생들이 서클 활동을 통해 대화하며 관계 속의 문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대안을 찾아가며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모습.
잇따르는 학교 폭력 문제에 정부가 가해자 징계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근절 대책을 예고한 가운데, 기독교 교육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가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며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예방 및 회복 과정의 필요성을 제언한다. 사진은 기독대안학교인 이야기학교 재학생들이 서클 활동을 통해 대화하며 관계 속의 문제를 발견하고 스스로 대안을 찾아가며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모습.

학교폭력(학폭) 이슈가 다시 뜨겁다. 최근 학폭을 소재 삼은 드라마가 화제를 모은 가운데 때마침 고위공직자 자녀의 과거 학폭 파문이 불거졌다. 여론이 악화하자 정부는 4월 중 징계 강화 등 가해자 처벌에 초점을 맞춘 ‘학교폭력근절 대책’ 발표를 예고한 상태다. 이른바 ‘엄벌주의’로 학교폭력을 다스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인데, 기독교 교육 전문가들은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기독 교사들의 모임인 좋은교사운동(공동대표:한성준 현승호)은 3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학교가 갈등에 대해 엄벌주의 방식의 징계를 강화하는 방식이 아닌 교육 주체 간의 신뢰 회복과 상호 존중을 통한 공동체 통합의 방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원 방식이 뒤따라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좋은교사운동은 지금까지 학교폭력이 사회적으로 불거질 때마다 정부가 엄벌주의를 내세운 데 대해 “가해자 처벌 강화 방식이 국민적 공분을 잠재우는 가장 빠르고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으며, 교육적 해결의 여지를 축소 시키는 보여주기식의 대책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교육적 해결을 위한 학교 공동체 차원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함을 주장했다. 복합적인 오늘의 학내 갈등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기구를 설치해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성과 책임, 학교 공동체의 책임과 지원 방안 등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좋은교사운동은 2011년부터 이 같은 피해자의 회복과 교육공동체의 재건을 목표로 하는 ‘회복적 생활교육’을 교육 현장에 안착시키고자 노력해 왔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회복적 정의’의 개념을 교육에 접목한 것으로써, 가해자가 잘못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음으로써 책임을 지는 ‘응보적 정의’와 달리 가해로 인해 깨어진 관계 회복과 피해 회복, 공동체 회복에 중점을 둔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가해 학생의 잘못을 덮어주는 건 아니다. 징계하더라도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과정을 거친 뒤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 전문가인 이재영 대표(한국회복적정의협회)도 최근 국회에서 열린 ‘학교폭력 문제의 교육적 해결, 어떻게 가능할까?’ 세미나에서 “처벌만 강조하는 ‘응보적 정의’는 오히려 가해자의 고의적 책임 회피를 조장하고 피해 학생의 치유와 회복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될 것”이라며 “피해 학생의 치유는 가해 학생의 진정한 반성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데, 처분 과정에서 피해 학생에게 사과할 기회를 잃게 되고 이는 관계성과 공동체성의 하락으로 이어진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좋은교사운동은 이처럼 학교가 주체가 돼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교사의 회복적 실천 역량 강화 △회복적 생활교육 담당 교사 배치 △학교 관계 회복 프로그램 질 제고 △학교 밖 갈등 중재 전문가와 학교 연결 강화 등의 필요성을 천명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을 요청했다. 이미 좋은교사운동 등 관련 단체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연수받은 교사들이 실제 학교에서 갈등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학교폭력 대응 및 평화롭고 관계 회복적인 학급 운영 등을 실천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교육 주체 간 관계성 강화 필수

가장 큰 이유로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들 수 있다. 관계 회복의 과정에 많은 관심과 시간, 힘을 투자해야 하지만, 성적 중심의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그만한 여유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폭 이슈에 사회가 함께 분노하고 있지만, 만약 학교에서 일정 시간을 할애해 예방을 위한 관계 형성 및 회복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하겠다고 하면 당장 학부모들로부터 동의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크리스천 부모들이 교육의 목적과 방향성 등에 있어서 일반적인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한 분위기를 바꾸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관계 형성 및 회복의 과정에 많은 관심과 시간, 힘을 투자하면 학교폭력 예방의 효과는 분명히 나타난다. 혜성교회(정명호 목사)가 운영하는 기독대안학교인 이야기학교는 교육과정에서 배움만큼이나 관계 형성에 큰 비중을 할애한다. 2010년 설립 당시부터 ‘샬롬의 교육생태계를 통한 공동체적 교육’을 비전으로 제시하며, 회복적 정의를 교육 현장에 적용해왔다. 학생들은 정기적으로 둘러앉아 서로의 삶과 생각을 나누고 공동체 의식을 높인다. 서로 칭찬하며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가는 평화적 대화 모임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서로의 심한 장난이나 무례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대화를 통해 직접 해결방안을 마련한다.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문제를 사전에 인식해 예방하고 더 건강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갈등이 발생한 경우 관계의 회복에 중점을 두고 자발적 책임을 높이며 공동체가 함께하는 ‘회복적 생활교육’이 뒤따른다.

이야기학교 교장 장한섭 목사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갈등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갈등을 폭력으로 가는 것을 막는 건 가능하다. 사전에 관계를 맺으므로 예방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평소 어떻게 관계성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한다. 학생들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선생과 제자,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도 관계성을 높이는 활동에 에너지를 쏟고 있다”라고 말했다. 학교가 진행하는 부모와의 만남 학생들의 소통, 교사 대화모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장 교장은 대체로 관계 형성이 충분치 못한 신설 학교에서 폭력 이슈가 빈번하다는 점을 들어 관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결국 학교폭력은 ‘관계’라는 기독교적 가치만 제대로 작동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구성원 간의 관계성을 농후하게 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스도인들의 '갈등 중재자' 참여 확대 당부

서울시교육청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을 운영하며 학교폭력 가해 학생 등 학업 중단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반승환 목사(소울브릿지교회)도 학폭 문제 해결에 있어서 당사자 간 관계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문제에 교회가 나서 함께 고민해주기를 부탁했다. 예방이 물론 우선돼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한 반 목사는 “사후 처리 과정에 교사와 학교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때 외부 위원으로 참여할 목회자 등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길러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장에서 보니 관계 회복에 있어서 세상이 결국 교회에 기대하는 모습을 발견한다”라면서 각박해지는 사회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중재자로 나서 화해를 이뤄가기를 소망했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