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순교정신 다양한 기림으로 되새김질

염산교회, 불굴의 기개 널리 알려져 전국서 방문객 찾는 명소
법성교회, 순교자료 추가 발굴·4월 7일 순교자기념관 개관

법성항은 온통 말린 참조기로 가득하다. 사람들도, 하늘 위 갈매기들도 이 짭짤하고 쫄깃한 생선을 맛보고자 끊임없이 포구로 모여든다. 고려시대 권력을 잃고 영광으로 유배된 이자겸이 자신을 내친 임금에게 이 생선을 진상하며, 비굴하게 꺾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掘非)라는 두 글자를 동봉한 것이 그대로 이름으로 굳어졌다. 바로 유명한 영광굴비 이야기다.

1950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 이 일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굴비처럼 서로 엮인 채 어디론가 끌려가는 풍경이 반복되었다. 끌려간 이들 대부분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야산에서, 바닷가에서 참혹하게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6·25전쟁 당시 전남 영광에서 학살된 이들의 숫자는 무려 2만5000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가 기독교인들이었다. 해방 이후 유난히 좌우대립이 첨예한 지역이었던 데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퇴로를 잃은 인민군과 좌익세력들이 공포심에 이성을 잃고 애꿎은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살육을 자행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염산교회에서는 김방호 목사와 허상 장로를 비롯한 77명, 이웃한 야월교회에서도 김성종 조양현 영수를 포함해 65명이라는 엄청난 수효의 순교자들이 나왔다. 확인된 기독교 순교자 숫자만 한 때 194명으로 집계됐으나, 역사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면서 그 숫자가 조금씩 늘어가는 중이다. 굴비 동네 한 가운데 법성교회도 순교사적을 간직한 교회 중 하나이다. 공식적으로는 김종인 목사와 송옥수 집사 등 7명이 순교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육신은 무덤에 잠들어 있어도 순교자들의 부활소망은 두고두고 생생하다. 77인 순교자 합장묘가 조성된 염산교회 앞마당.
육신은 무덤에 잠들어 있어도 순교자들의 부활소망은 두고두고 생생하다. 77인 순교자 합장묘가 조성된 염산교회 앞마당.

순교자들의 규모도 경이롭지만, 그들이 최후를 맞이한 방식도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부분이 헌신적인 복음사역자로, 순박한 농민과 어민으로 살았던 이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학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억울함과 공포심이 이들의 가슴을 뒤흔들었지만, 서로를 격려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찬송가를 부르며 당당하고 의연하게 순교의 길을 걸었다. 죽음 앞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진정한 ‘굴비’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순교자들의 죽음과 함께 교회당이 불에 타고, 예배가 중단되며 사실상 교회가 사라져버린 듯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순교자들의 피는 기어이 교회들을 다시 살려냈고, 다툼과 아픔의 잿더미 위에서 평화와 생명을 피워내는 역할을 했다.

법성교회 7인의 순교자들의 스토리를 형상화한 조각품들. 부활의 그날에는 이 속에 담긴 이야기들도 생생히 살아날 것이다.
법성교회 7인의 순교자들의 스토리를 형상화한 조각품들. 부활의 그날에는 이 속에 담긴 이야기들도 생생히 살아날 것이다.

사실 전남 영광은 백제시대 최초 불교전래지로, 영산성지로 대표되는 원불교 발상지로, 천주교를 향한 신유박해의 역사적 현장으로 각 종단에서 성지(聖地)로 받드는 고장이다. 타종교에 비해 사실상 후발주자나 다름없는 개신교가 이 치열한 영적 경합의 현장에서 오늘날 가장 많은 종교인구를 기록하며 탄탄한 토대를 쌓은 배경에는 순교자들의 희생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의미를 잘 알기에 믿음의 후예들은 각자의 교회에서 순교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을 갖고 기념비를 세우는 한편, 이곳에서 벌어진 위대한 순교사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순례객들이 영광을 찾아왔다. 그리고 ‘순교성지’라는 별명을 이곳에 붙여주었다.

2003년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이 땅에서 최후를 맞은 설도항 수문 옆에 ‘영광군기독교인순교탑’이 건립되었고, 2009년에는 야월리에 ‘기독교인순교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예장통합 교단이 2013년 제98회 총회에서 야월교회를 한국기독교사적지 제20호로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예장합동 총회에서 염산교회와 법성교회를 차례로 한국기독교순교사적지 제1호와 5호로 지정하는 등 각 교단 총회 차원의 영광지역 순교사적에 대한 관심과 기념사업 지원도 이어졌다.

야월교회 기독교순교자기념관을 장식하는 두 개의 손 조형물에서 우리는 상처 입은 인간들의 손을 어루만져 부활의 기쁨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을 느낀다.
야월교회 기독교순교자기념관을 장식하는 두 개의 손 조형물에서 우리는 상처 입은 인간들의 손을 어루만져 부활의 기쁨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손을 느낀다.

순교자 선양사업이 갈수록 힘을 얻는 중에 염산교회에는 6·25전쟁 당시 소실된 옛 예배당을 복원할 수 있었고, 법성교회와 야월교회는 각기 순교역사관과 순교영성훈련센터 건립에 착수했다. 지역교계 인사들은 사단법인 우림을 통해 2018년부터 순교종합관 건립과 기독교순교문화제 개최 등을 추진하고 나섰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순례자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고, 추진하는 사업들은 답보상태에 빠지거나 어떤 경우에는 심하게 실타래가 꼬여 버리기도 했다. 영광은 잠시 고요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세 번의 겨울이 지났고, 또 새 봄이 찾아왔다. 어김없이 돌아온 부활의 기쁜 소식은 조금씩 영광의 교회들과 성도들을 들뜨게 한다. 깊은 침잠의 시간 동안 법성교회가 기어코 순교기념관을 완공해 개관식을 갖는다는 소식이 주변 다른 교회들까지 분발하게 만들고 있다.

법성교회는 지난 3년 동안 꾸준한 발굴작업을 통해 7명의 공식 순교자들 외에 훨씬 더 많은 순교자들에 대한 증거들을 찾아냈다.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장기탁 장로의 녹취록, 순교자들의 생전모습이 담긴 사진과 여러 관련 문서 등도 확보해 개관을 앞둔 전시관에 비치해 놓은 상태다.

순교자들이 최후를 맞은 염산 설도항에 세워진 추모탑.
순교자들이 최후를 맞은 염산 설도항에 세워진 추모탑.

뿐만 아니라 화순 구암교회 김준희 목사가 순교자 7인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형상화 해 제작한 나무 조각품들, 고 김종인 목사의 딸 김덕화 권사의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40평 크기의 전시관을 풍요롭게 장식하고 있다.

이처럼 자체 교회의 순교사적은 물론이고 한국교회사와 영광군교회사 그리고 각 교회의 순교사적들까지 두루 담은 기념관은 순례자들을 다시 영광으로 이끄는 촉매제이자, 법성포에서 백수해안도로를 거쳐 염산으로 이어지는 순교벨트의 기점으로서 큰 역할이 기대된다. 4월 7일 열릴 개관식에는 예장합동 총회장 권순웅 목사와 역사위원장 문상무 목사 등이 참석한다.

법성교회 이병화 목사는 순교기념관을 통해 “순교역사가 한국교회사 전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이해하고, 여러 세대가 순교신앙을 온전히 배워가는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법성교회 이병화 목사는 순교신앙의 올바른 계승으로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동력을 얻기를 소원한다.
법성교회 이병화 목사는 순교신앙의 올바른 계승으로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동력을 얻기를 소원한다.

전반적인 침체기를 맞은 한국교회가 회복하기 위해 순교신앙의 계승만큼 적합한 동력은 없다고 역사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실제로 예장대신 총회 임원들을 비롯한 여러 관람객들이 법성교회를 비롯한 영광 일대 순교유적들을 답사하는 등 이미 3월 초입부터 순례의 발길이 분주해지는 중이다.

순례자들은 각자의 목에 무거운 돌을 맨 채 염산교회 앞마당에서 설도항 수문까지 이어지는 순교자의 길을 행진하고, 야월교회 순교자기념관에서는 미움과 슬픔으로 상처 난 사람의 손을 주님의 거룩한 손이 어루만지는 대표 조형물을 감상하며 순교신앙의 참 의미를 되새긴다. 법성교회의 순교사적과 깊은 내력을 지닌 종탑 앞에서도 마찬가지 감성을 느낄 수 있다.

굴비, 죽어 사라진 듯 보이다가도 어느 누군가의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 인생을 풍성하고 건강하게 일깨워주는 존재. 순교자들도 그처럼 나태해진 우리들을 재차 일으켜 세우고, 한국교회를 새로운 부흥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굴비의 고장 영광은 그래서 참 부활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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