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평안, 얼굴에 미소 되찾는 그날 함께 울고 웃을래요”

“교회가 너무 조용해요. 그리스도인들은 약자의 편에 서서 진리를 외쳐야 하잖아요. 내 일처럼 느끼시긴 어렵겠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이 있다더라’ 정도만이라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청년들의 목소리를 절대 외면치 않으시기를 부탁드려요.”

이태원 참사 발생 150일을 며칠 앞두고 열린 희생자 유가족과 그리스도인들의 대화 자리에서 유가족을 대표해 참석한 고 김의진 씨의 어머니 임현주 씨는 교회를 향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을 끄지 않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믿는 자들로서 이태원 참사 희생의 그날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임 씨는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다음 날 교회에 나갔다가 “수많은 청년들이 귀신을 섬기다가 희생을 당했다”는 설교를 듣고 뒤늦게 사고 발생을 인지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기도 응답으로 만난 남편과 사이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첫 열매, 의와 진리라는 뜻의 ‘의진’ 씨는 어머니 임현주 씨에게 생명처럼 소중한 보물이었다. 온화한 성품에 부모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항상 순종하던 아들, 15개월 차이 동생에게 늘 양보하던 착한 형이었다.

그러나 4대째 기독교 집안의 가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세간의 시선은, 특히 교회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임 씨는 일부 교회의 이태원 참사에 대한 혐오 발언에 “아들을 포함해 그곳에서 쓰러져간 대다수는 결코 귀신을 숭상한 게 아니라 단지 어릴 적부터 익숙한 문화를 경험하러 간 평범한 청년들”이라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행여 부모 속을 썩이고 말썽부리는 이들이었다고 해도 그 같은 희생을 당해야 하는 건 아니”라며 “부족해도 그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써가실지 누가 아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내 아들의 영혼은 평안하게 하나님 품에 있다고 믿는다”면서도 “아름다운 청춘들의 명예를 회복해 그들이 꿈꿔온 미래가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통해서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교회를 향한 쓴소리를 남기면서도 늘 곁에서 유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려주고 함께 안타까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시간을 할애하고 도움 주는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우리 힘은 미약하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하실 것을 믿는다”고 확신했다.

이 자리에 함께한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함께하겠다” “기도하고 마음을 모으겠다”며 격려와 연대의 마음을 표시했다. ‘10·29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사람들은 지난 1월 이태원 참사 100일을 일주일여 앞두고 처음 모였다. 개별적으로 각 자리에서 참사에 가슴 아파하던 사람들이 뭉친 이유는 외롭고 지친 유가족들에게 버팀목이 돼주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12~3시 서울광장에 차려진 시민분향소 지킴이로 나선다. 조문객들에게 국화꽃을 나눠주고 청소하며 서명받는 등의 봉사를 담당한다. 화요일 저녁에는 릴레이 기도를 이어가고, 주일 오후에는 유가족들과 함께 예배하기를 원하는 교회들을 연결하고 있다. 앞서 녹사평역 분향소를 서울광장으로 옮길 때도 목회자들을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모았다. 참사 발생 100일을 맞아 기도회를 갖고,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 것도 모임의 역할이다.

그리스도인 모임의 실무간사를 맡은 고난함께 김지애 홍보기획팀장은 1997년생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동갑인 나이이자 이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도 또래다. 그는 “10대 때부터 세월호 참사를 마음에 품고 지내다가 이태원 참사까지 터지니 운이 좋아 걸러진 느낌이 들었다”며 “살아남은 자로서 빚진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무자로서 감정에 휩쓸리는 것을 염려해 유가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자제하고 있지만, 자녀와 같은, 때로는 형제자매 또래의 청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 희생자 가족들은 위로를 경험하고 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김 간사가 스스로에 항상 던지는 질문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늘 답은 같았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함께 사는 공동체와 평화를 이루고 그 평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본인 탓이 아닌 이유로 죽고,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은 당연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교회가 이 참사를 정치적 시선이 아니라 예수님의 시선으로 바라봐주기를 기대했다. 연대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루아침에 자녀를 잃은 부모의 심정마저 왜곡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참사 이후 반복해서 하는 말인데 여전히 ‘왜 그곳에 갔냐’고 묻는 교회들이 많아요. 그 질문이 아니라 ‘왜 돌아오지 못했는가’를 그리스도인들이 질문하고 ‘왜 아직 눈물 흘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함께 목소리를 외치며 진실을 찾아가는 걸음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 모임의 목적이자 목표는 유가족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교회의 걸음이 늦었던 만큼, 마지막 순간에는 교회가 같이 울고 웃자는 다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사회적 참사가 잘 매듭지어진 경우는 별로 없다. 이번에도 이미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져 유가족들이 마음에 평안을, 얼굴에 웃음을 되찾을 때가 끝이라는 생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2000년 전 희생당한 청년을 기억하며 교회의 정신을 지켜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을 통해 그 죽음을 의미 있게 상기하듯이 다가오는 부활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159명의 희생자들과 가족들에 관심을 갖고 함께해주기를 요청했다.

추모와 연대 기도회에 함께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다가오는 부활절에도 이 시대 고난받는 이웃인 유가족들과 예배하며, 예수 부활의 소망이 이들의 마음에 전해지기를 함께 기도할 예정이다.
추모와 연대 기도회에 함께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다가오는 부활절에도 이 시대 고난받는 이웃인 유가족들과 예배하며, 예수 부활의 소망이 이들의 마음에 전해지기를 함께 기도할 예정이다.

이러한 가운데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 당시 가장 어렵고 힘든 이웃들과 예배해온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예배가 올해 부활절에는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과 연대한다. 이번 예배는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렘 20:12, 계 21:5)는 주제로 4월 9일 부활주일 오후 4시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서울시청 앞에서 드린다.

교회들이 부활주일을 앞두고 고난주간에 모여 기도하며 부활 소망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처럼, 이번 연합예배를 준비하는 이들 역시 가난과 애통의 마음으로, 그렇지만 희망을 꿈꾸며 기다리고 있다.

연합예배 준비위원으로 참여하는 성서한국 김희석 사무총장은 “사건 자체도 힘들고 아프지만 이후 과정이 미흡했다. 애도하는 데만 마음을 쏟아도 부족한 희생자 유가족들이 직접 나서서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며 이번 예배가 위로와 연대뿐만 아니라 참사 이후 일부지만 교회가 유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모습에 대한 반성도 뒤따를 것이라고 소개했다.

“고난받는 이웃들이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결국 마음으로 의지하고 부담 없이 부탁하는 것은 교회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마음으로 예배를 기도하며 준비하고 참석해주시면 좋겠어요. 또 예배 이후에도 교회가 계속해서 그들을 보듬어 안고 손잡고 함께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다잡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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