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돈 교수
실천신대·목회사회학연구소장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적거리두기로 인해 성도들이 교회에 모이기 어렵게 됐고, 헌금도 적어지면서 교회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별히 작은교회들의 어려움이 컸다. 교인들 가운데는 대면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에 맞춰 부담 없이 교회를 옮기는 경우도 많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교회들로서는 교회 유지가 더욱 어렵게 됐다.

그러나 팬데믹 초기에 교회는 형제애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특히 ‘작은교회 임대료 내주기’가 하나의 운동으로 일어나 주목을 끌었다. 작은교회 임대료 내주기는 교회외 교회다움을 깨우쳐주는 사례였다. 한국교회는 작은교회들을 위해 임대료를 대신 내주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특히 몇몇 교단에서는 기금을 만들어서 지원하기도 했다. 또 일부 대형교회들은 상상하기 힘든 큰 액수로 작은교회들을 섬겼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것은 ‘교회는 공동체’라는 것이었다.

처음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 몇 달만 지나면 이러한 위기는 지나가고, 목회는 정상으로 돌아올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대면예배는 요원했고, 교회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교회의 연합은 자연스레 사라졌고 각자도생하는 상황이 됐다. 작은교회에 대한 지원도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1년 전에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교회 담임목사의 이야기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교회에서 지원하는 작은교회가 몇 곳 있었는데, 그중 세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문을 닫아야 하니, 목회자가 얼마나 마음 아팠겠는가.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교인들과 함께 자신들을 지원해 주었던 교회로 합하여 들어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목회자 입장에서 이제 교회로 모일 수 없으니 각자 흩어지라고 할 수도 없고 교회 이름으로 다른 교회에 합하여 들어가고자 했던 것이다.

아마 코로나 시기에 적지 않은 교회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을 것이다. 몇몇 안 되는 교인들을 데리고 겨우 꾸리고 버텼는데, 그나마도 이제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교회는 흩어지고 목회자는 갈 곳을 잃었다. 노회에도 폐교회 신청을 해야 할 상황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목회자들에 대해 교회도, 노회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한 몸이라고 했던 교회가, 특히 목회자들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노회가 이런 이들에 대해서 모른 척한다니 이건 윤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 몸이라고 했던 지체의 어려움에 눈을 감고, 외면한다면 그건 사회의 윤리보다도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점점 목회환경은 어려워지고 있다. 모이는 것이 어렵고, 교인들은 헌신하려 하지 않는다. 온라인 시대로 들어서니 이제는 교인을 만나는 것도 힘들어졌다. 이 와중에 특이한 일은 작은교회들은 버티는 것조차 힘들고, 중형교회는 점점 어려움에 빠지고 있는데, 대형교회는 오히려 더 부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들이 점점 양극화가 돼가고, 사람들은 특정 교회로 몰리고 있다. 여기에 금융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교회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교회들은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지는 것 같다. 공동체가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 ‘나 살기 바쁘다’는 생각이 커지는 것 같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라는 표어가 요즘처럼 무색할 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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