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탤런트 박원숙 씨가 새벽에 걸려온 고 최진실 씨의 전화에 신경질을 낸 것에 대해 미안함을 표했다. KBS의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 그는 어느 새벽에 고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던 일을 회상했다. 그날은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한 달 전이라고 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온 전화에, 무슨 일이냐 했는데 급한 일도 아님을 확인한 후 “지금 몇 시인데 그런 일로 전화를 하냐”며 신경질을 냈다는 것이다. 그 새벽 전화 후 한 달이 지나 그녀는 고인이 되고 말았다. 새벽에 전화한 것은 어떤 용무 해결보다, 그냥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이런 아픈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 역시 한밤중 또는 이른 새벽에 전화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때로는 술에 취한 상태이기도 했고, 또는 울면서 하는 전화였다. 그런 전화의 특징은 금방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우울한 목소리 앞에 어찌할 바를 알지도 못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그분들이 내게 전화라도 할 수 있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한밤중에 전화하기 힘들었을 텐데 내게 전화라도 하면서 마음을 달랬던 그분들이 고맙기도 했다.

우리 모두는 대화가 필요한 상태일지 모른다. 이미 우리나라의 가구 형태는 1인가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2021년 기준 1인가구 수가 전체의 33.4%인 716만6000여 가구이다. 연령대는 20대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런 통계를 보니 우리 젊은이들이 얼마나 외로울지 싶어 참 안쓰럽다.

가족이 함께 산다 해도 많아야 둘 낳고, 하나도 낳기 힘든 세상이니 형제나 자매가 없는 외톨이가 허다하다. 그래서 혼자 놀고 혼자 밥 먹고 혼자 큰다. 그렇게 외로움에 익숙해진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으로 연결된 게임이나 도박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는 무엇을 하는가? 외로움 해결의 탈출구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이렇게 묻지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기 부끄럽다.

이 시간에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게, 따뜻하게 귀를 빌려주어야 할 텐데. 대화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내가 먼저 말 한 마디라도 건네야 할 텐데 난 너무 바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바쁜지 주님께서 묻는 것 같아 고개를 떨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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