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연대로 이뤄낸 대구의 부활을 기억합니다

팬데믹 초창기 영리를 포기하고 감염병 전담병원 자처해준 동산의료원의 희생
겨레의 위기를 온몸으로 막아낸 기독인들의 열정과 결단 앞으로도 발휘되어야

과거의 일만 역사가 되는 게 아니다. 5·18 IMF 천안함 세월호처럼 우리 당대에 벌어졌거나 앞으로 진행될 일들 또한 한 시대의 상징으로 남는다. 무려 3년 넘게 전 세계를 휩쓸었고, 지금도 우리 곁에 도사리는 코로나19 또한 온 인류의 기억에 생생히 새겨질 것이다.

대한민국에 팬데믹의 서막이 열리던 시기, 그 직격탄을 처음 맞은 대구·경북지역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기억에서 헤어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신천지 발 감염확산 사태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더 많은 이들이 가까운 이들을 잃거나 서로 격리되는 공포를 남들보다 앞서 더 절절하게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온통 끔찍한 순간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시민들을 구하고자 자기 목숨까지 내걸고 수백 수천 시간을 바쳐 희생한 의료인들과 자원봉사자 등 여러 영웅들의 기억, 전국에서 답지한 수많은 이들의 아낌없는 응원과 위로로 인한 따뜻한 연대의 기억들이 남아있다. 사실 역사란 그런 이들의 헌신을 통해서 앞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다.

그 혼돈의 중심에서 거점치료병원 역할을 수행했던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에 올해 2월 ‘코로나19 기억의 공간’이 세워졌다. 대구제중원 시절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옛 선교사들이 머물던 청라언덕 위에, 그 후예들이 중심이 되어 온 몸으로 써내려간 위대한 기록의 공간이다. 일상의 회복으로 분주한 시간을 잠시 멈추고 그 공간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을 다시 하나씩 새겨보자.

동산의료원이 병원 전체를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당시의 풍경.
동산의료원이 병원 전체를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당시의 풍경.

▲민간병원이 공공병원 역할을

2020년 2월 18일 대구에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네 차례의 대유행이 진행되고 무서운 속도로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대구의 봄은 멈춰버렸다. 도시 전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할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무엇보다 확진자들을 수용하고 치료할 병상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대구에는 대구의료원, 경북대병원, 영남대병원, 국군대구병원 등 여러 공공병원들이 존재했지만 이들의 힘만으로 팬데믹의 파고에 맞서기란 위태로웠다. 2월 19일 대구시장이 주재한 감염관리 대책회의를 통해 동산의료원에 병상을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결정은 곧바로 내려졌다. 계명대학교 총장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사회적 책무이다. 과거에도 우리 병원이나 학교에서는 사회가 어려울 때 늘 그래왔다”며 긴급병상 사용을 승인했다. 아담스, 존슨, 플래처 등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이 동산의료원의 전신인 미국약방과 대구제중원을 창립할 당시의 정신이 이러한 결정의 바탕이 됐다.

계명대동산의료원이 대구 청라언덕에 조성한 ‘코로나19 기억의 공간’.
계명대동산의료원이 대구 청라언덕에 조성한 ‘코로나19 기억의 공간’.

하지만 병상 몇 십 개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해결될 국면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한 나절 만에 다시 긴급회의가 열렸다. 더 놀라운 결정이 내려졌다. 동산의료원을 ‘코로나19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영한다는 것으로, 사실상 시민을 위해 자신들의 영리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동산의료원은 민간병원 최초로 공공병원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동산의료원에 입원 중이던 일반환자들 대부분이 하루 사이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그 자리를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채웠다. 피를 말리는 사투가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영웅들의 활약이 시작되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된 후 이틀 만에 200여 개의 병상이 가득 찼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입원 대기자 수는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인력도 시스템도 장비도 온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산의료원이 감당할 몫은 컸다. 비상대책상황실의 지휘 아래, 의료진과 병원 직원들이 오롯이 그 짐을 짊어져야 했다.

해당 과목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매일 같이 격리된 병상으로 걸어 들어가, 아직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바이러스와 싸우며 환자들을 돌보아야 했다. 레벨 D 보호구 착용으로 얼굴의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고, 근무를 마친 후에는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쓰러지기 일쑤였지만 다음날이 되면 마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자신들의 일과를 반복해 수행했다.

코로나19 극복에 앞장선 작은 영웅들을 대표해 국민훈장을 수여한 동산의료원 직원들. 왼쪽부터 서영성 원장, 조치흠 원장, 조화숙 간호부장.
코로나19 극복에 앞장선 작은 영웅들을 대표해 국민훈장을 수여한 동산의료원 직원들. 왼쪽부터 서영성 원장, 조치흠 원장, 조화숙 간호부장.

김경란 간호사의 경우, 자신의 목숨을 내걸다시피 하며 감염위험이 가장 높은 중환자실에서 하루 40명의 환자를 상대했다. 그녀는 2021년 대구시민의 날에 코로나19 위기에 숨은 공을 세운 시민영웅 4명 중 하나로 선정됐다.

3월 2일 국내 최초로 생활치료센터까지 오픈하면서 할 일은 더욱 많아졌다. 병원 자체 인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소식이 들리자, 여기저기서 의료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대구로 모여들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인 곽혜민 소위는 임관식이 끝나자마자 대구로 달려와 현장에 투입되었고, 당시 국민의당 대표였던 안철수 국회의원도 잠시 정치인의 옷을 벗고, 의사 가운을 다시 착용한 채 동산의료원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동산의료원과 같은 기독교재단 산하의 계명대 학생 400여 명은 더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이들을 도와달라며 자신들에게 지급된 장학금을 학교에 되돌려주는 미담의 주인공이 됐고, 대구 수성수 범어동의 기단회초밥과 강신학셰프봉사단은 동산의료원 등 의료기관에 490개의 도시락을 만들어 전달하기도 했다. 대구 고산중학교의 최형빈 이찬형군은 코로나19 현황을 알려주는 인터넷 홈페이지와 휴대폰 어플리케이션 ‘코로나 나우’를 제작하여 많은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심지어 그로 인한 수익금으로 마스크를 구입해 다시 기부하기도 했다.

그 무렵 SNS 상에서 유행한 ‘#덕분에’라는 해시태그는 바로 이들을 위한 찬사였다. 제49회 보건의 날 기념식에서는 대구의 수많은 작은 영웅들을 대표해 동산의료원 산하 계명대동산병원 조치흠 원장에게 황조근정훈장이, 대구동산병원 서영성 원장에게 대통령 표창이, 간호부장 조화숙 간호사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이 각각 수여됐다.

대구의 의료진과 봉사자들을 위해 응원의 글귀와 기도문들을 담아 인천 은석교회가 보내온 대형 현수막.
대구의 의료진과 봉사자들을 위해 응원의 글귀와 기도문들을 담아 인천 은석교회가 보내온 대형 현수막.

▲전국에서 밀려온 연대의 물결

국가 차원의 위기나 대참사가 벌어지면 반드시 일어나던 온 국민적 연대의 물결이 이번에는 당연히 대구로 향했다. 성금으로, 구호물품으로, 응원 편지로 보낸 정성들이 동산의료원 마당에도 가득 쌓였다.

특히 예장합동 소속 인천 은석교회(김종석 목사)에서 보내온 대형 현수막은 의료진과 환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영유아부 어린이들부터 장년 성도들까지 온 교우가 보내온 응원글귀와 기도문 그리고 사진들이 커다란 스크린을 넘치도록 채웠다.

‘의사 선생님 힘내서 아픈 사람 고쳐주세요. 코로나 걸리지 마세요. 기도 할게요.’(유치부 우하랑)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 누군가의 부모일 텐데 스스로 국가 그리고 국민을 위해 힘써주시는 모습에 감사드려요. 여러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고등부 김도훈) 이런 글귀들이 지금도 ‘기억의 공간’ 한쪽 벽면을 장식하며 관람객들을 미소 짓게 한다.

확진자들이 격리된 병실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의료진들의 모습.
확진자들이 격리된 병실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의료진들의 모습.

광주광역시는 전국 최초로 대구의 확진자를 위한 격리치료소를 마련해 병실 부족의 고민을 덜어주는가 하면, 전북지역에서는 군산의료원 남원의료원 진안의료원 등이 자신들의 병상 중 절반을 대구의 환자들에게 내주었다. 무명의 광주시민이 대구의 소방관들에게 152만원의 위로성금을 보내는가 하면, 보답하는 의미로 경북 성주의 한 농민이 특산품인 참외 10상자를 광주로 보내기도 했다. ‘달빛동맹’이 무르익는 끈끈한 연대 사이에 지역감정이나 동서갈등 따위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드디어 4월 3일 대구의 확진자 수는 한 자리수로 줄어들었고, 첫 확진자가 발생한 후 53일 만에 제로를 기록했다. 죽음의 그림자는 거두어지고, 대구는 다시 생명의 도시로 부활했다.

그 후로도 거듭 나타났다 사라지는 대유행으로 대구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가 여전히 코로나19와의 기나긴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대구에서 이루어낸 극복의 기억은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힘이 되었다.

그리고 대구와 전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헌신하고 연대한 기억들은 한국교회가 참된 부활신앙과 생명사역을 어떻게 이 땅에서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기억의 공간’은 그러므로 ‘부활의 공간’ ‘생명의 공간’이라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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