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은 전범 국가로서 치러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역사 앞에 당황스러울 뿐이다. 일본의 군정을 담당한 맥아더 사령관은 마땅히 처벌되었어야 할 전범들에게 관용을 베풀도록 건의했다. 그 결과 쇼와 천황(昭和天皇)은 전쟁책임에서 벗어났다. 일본에 대한 편리한 통치를 위한 맥아더의 판단 때문이었다. 더 끔찍한 일이 있다. 6주 만에 무려 3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난징 대학살의 주범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역시 면죄부를 받았다. 황족이라는 이유였다. 미국의 이해관계만 고려한 결과였다.

더욱 경악스러운 일은 하얼빈에 주둔했던 731부대, 즉 생체실험이라는 반인륜적인 죄악을 저지른 관련자들 역시 모두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중국, 러시아, 그리고 우리 조선인을 대상으로 전염병 감염이나 강제 임신에 내몰고 산채로 부검을 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탄저균 실험도 했다.

그 흔적을 찾아 우리 교인들과 함께 하얼빈을 방문했을 때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 부대를 지휘한 이시이 시로 부대장, 그는 의학박사요 미생물학자로서 세균전 마니아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악명 높은 부대의 인체실험 정보 전부를 미국에 이양하는 조건으로 누구도 처벌당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이시이는 큰돈을 받았고 미육군 연구소의 고문에 오르기도 했다. 그 후 일본에 돌아와 병원 개업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 부대의 연구원 대부분도 마찬가지로 처벌이 아닌 편안한 여생을 보냈다.

살아남은 전범 중 한 사람이 일본 전 총리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다. 이시이 부대 직속상관이기도 했다. 침략 전쟁의 책임자인 그는 일제의 전쟁 정당성에 목소리를 높인 자이다. 도쿄재판에서 무죄판결 받은 그는 56~57대 총리 자리까지 차지했다. 아베 전 총리의 극우적 행동이 이해되는 이유이다.

도쿄재판에서 전범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기에 아베를 비롯한 일본 우익들이 여전히 활개를 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바른 판단과 정리가 필요한 이유를 깨우친다. 아울러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피해국의 아픔을 어루만지지 못하는 강대국의 모습은 전범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다. 나도 힘을 가지면 이런 모습일까?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