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교회 70주년 기념 ‘온충지신’ 콘퍼런스…성경 사랑이 변화 원동력, 교회가 말씀 원류돼야

충현교회 성도들이 설립 70주년을 맞아 열린 콘퍼런스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3명의 강사들은 ‘성경기독교’ 특성을 띈 초기 한국교회의 전통을 계승해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북한선교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현교회 성도들이 설립 70주년을 맞아 열린 콘퍼런스에서 강의를 듣고 있다. 3명의 강사들은 ‘성경기독교’ 특성을 띈 초기 한국교회의 전통을 계승해 지역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북한선교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충현교회(한규삼 목사)가 3월 11일 ‘온충지신: 충현을 앎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다’를 주제로 설립 70주년 기념 학술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콘퍼런스에서 강사들은 “성경 기독교 전통을 회복함으로 지역교회와 북한까지 복음을 힘 있게 전하자”고 권유했다. 다음은 강의 내용 요약이다. <편집자 주>

 

초기 한국교회가 주는 역사적 교훈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교수
이만열 교수

한국기독교는 외국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에 성경이 먼저 번역되고 보급된 데서 시작된다. 이것은 세계 선교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역사였을 뿐만 아니라 그 후 한국 기독교의 성격을 규정하고 한국교회의 특수한 성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성경이 한국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인식한 선교사들은 한국 기독교인들을 ‘성경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혹은 ‘성경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불렀고, 또 한국의 기독교를 ‘성경기독교’라고 규정하며 언급했다. 한말 일제하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한국 기독교의 ‘성경기독교’적인 성격은 지속됐고 또한 교회 성장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한국교회가 자랄 수 있는 영적인 토대도 바로 성경이 한국사회에 널리 보급되고 교인들 사이에서 공부되는 과정을 통해 마련됐다.

선교사가 입국하기 전, 성경의 반포는 전도와 개종을 촉진시켰다. 성경이 보급돼 읽고 암송했고, 말씀은 생기 없고 영감 없는 백성들의 뼈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그들은 반드시 새로운 남자와 여자로 다시 태어났다. 성경이 광범하게 반포되자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는 성경을 읽기 위한 ‘국문공부’ 운동이 일어났고, 성경공부를 위해 ‘사경회’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성경을 통해 기독교를 수용한 한국에서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사회를 개혁하고 나라를 사랑하고자 했다. 한국 기독교인의 사회개혁과 나라사랑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시대적인 과제와 연관되어 있다. 시대적인 과제란, 한말 기독교 수용 당시에는 중세사회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유습을 개혁해야 한다는 것과 외세의 침략에 저항해 국권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1899년 3월 1일자 ‘대한그리스도인회보’라는 신문에는 지방 군수로 새로 발령을 받은 양반이 예수교가 있는 고을로 갈 수 없다며 다른 고을로 옮겨 달라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이유는 예수 믿는 마을에 가서는 예수교인들 때문에 무단히 백성의 재물을 뺐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기사가 신문에 게재되었을 무렵은 아직 세례교인이 1만명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오늘날 기독교인이 인구의 20~25%를 차지하고서도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초대교회를 다시 뒤돌아보게 한다. 반상과 남녀의 차별을 없애려는 기독교적 개혁운동, 사회적 부패에 대한 저항, 국권수호운동, 항일운동, 독립운동 등은 성경교육을 통해 인간관과 직업관이 변화되었고 성경을 통해 애국교육이 이뤄졌던 것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보수전통교회로서 시대적 역할
조성돈 교수(실천신대)

조성돈 교수
조성돈 교수

지난 3년은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코로나 상황이 마무리되면서 3년간 우리 몸에 익었던 방식을 버려야 하는지 또는 연결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다. 예를 들어 주일 식사를 재개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교회마다 다 있다. 어느 교회는 외주를 주기도 하고, 식당과 할인을 조건으로 하는 계약을 맺기도 하고, 어느 교회는 아예 식당을 포기하는 곳도 보았다.

단순한 예를 들었지만 정작 문제는 변화된 성도들의 신앙태도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각 교회마다, 각 기독교단체마다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온라인 상에 쏟아놓고 있다. 유튜브를 조금만 뒤져봐도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에 도움이 될 내용들이 넘쳐난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신도들은 코로나 상황에서 영상을 통해서 도움을 받으며 자기들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이전에는 교회가 해 주었던 것들을, 이제는 성도들이 알아서 길을 찾아가고 있다.

또 평신도들의 신앙동아리가 든든해졌다. 지역교회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모임이 활성화되고 모임을 넘어 성경공부 이상의 신학적 배움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교회의 대중들 가운데 항상 기초에 머물러 있는 신앙교육과 공동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이제는 주체적으로 신앙을 만들고, 더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목회에 한 측면으로 위기일 수 있다. 교인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에 열심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측면에서 보면 스스로 신앙을 세워갈 수 있는 튼튼한 신앙인이 훈련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제 우리 교인들은 콘텐츠가 부족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너무 많다. 검증되지 않은 기독 콘텐츠들이 온라인 상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원류를 찾고 있다. 말씀의 원석, 원초적 복음이 필요하다. 해석되어진 말씀, 적용되어진 복음이 아니라 그 말씀과 복음을 원한다. 세상의 풍조에서 흔들리지 않을 말씀과 복음의 기둥이 있기를 원한다. 보수전통교회는 바로 그러한 기둥이다.

통일한국을 위한 교회 역할과 준비
하광민 교수(총신대 통일개발대학원)

하광민 교수
하광민 교수

해방 이후 남한으로 월남한 자의 숫자는 최소 50만에서 최대 200만명까지 추산한다. 대략적으로 월남자의 35~40% 정도가 개신교인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6·25전쟁을 전후로 월남민들은 늘어났다. 그리고 남한에서의 월남민 목회자들의 교회 개척은 더욱 열기를 띠었다.

이들은 김일성 공산주의의 핍박을 피해서 남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쉽사리 북한선교와 통일운동에 뛰어들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선교를 가장 앞장서서 한 인물이 충현교회의 김창인 목사였다. 그는 1977년 ‘북한선교회’를 설립했다. 월남민 목회자인 김창인 목사는 한국교회로 하여금 북한을 선교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김창인 목사는 북한 교회 설립 중심의 사역을 했고 이는 한국교회의 향후 북한 선교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향후 한국교회가 북한 선교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김창인 목사로부터 시작된 사이 두 가지, 즉 북한 동포에 대한 사랑과 복음에 대한 선교적 확신을 다시금 점검해야 한다.

그러면 정전 70주년이 되는 현재 한국교회는 통일과 북한 선교를 위해서 어떤 역할과 준비를 해야 하는가?
통일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은 크게 4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첫째, 한국사회 내에서 통일논의 생산자 역할이다. 둘째, 갈등의 중재자 역할이다. 셋째, 사랑과 공의(십자가)의 실현자 역할이다. 또한 세계 최악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통일을 위한 준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람 준비하기다. 탈북민 사역자, 남한 출신 사명자를 양성해야 한다. 둘째, 한국교회 내의 북한-통일선교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 내에 북한통일선교 부서를 설치하고 전문사역자를 모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다음세대 통일교육이다. 인류애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분단 역사와 한국교회의 북한통일선교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역사 교육과 아울러 실제 사례 중심과 현장체험학습이 병행돼야 한다. 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북한을 선교적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넷째, 교단과 협력해 북한교회 세우기 준비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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