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요즘 “섭섭하지 않으세요?”라는 얘길 듣는다. 딸아이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들의 인사다. 그 물음 앞에 잠깐 멈칫했다. ‘아, 섭섭해야 하나? 그렇지 않으면 아빠도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정신 차리고 섭섭할 일이 아님을 확신했고, 오히려 매우 기쁜 일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복인가?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때와 달리 요즘은 ‘결혼이 선택’이라는 카피가 공공연히 TV 광고에 등장한다. 그러니 더욱 기쁘고 감사하다.

물론 질문하는 분들의 의도를 왜 모르겠는가? 또 섭섭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정말 요즘 말대로 1도 섭섭하지는 않다.

딸아이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집을 떠나 살았다. 지방의 대안학교에서 공부하고 대학 입학 후에는 집에서 불과 30분 거리임에도 학교 앞에 둥지를 틀고 자취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나 싶더니 해외 봉사를 하겠다며 홀로 인도 콜카타로 떠났다. 치안이 불안한 나라에서 혼자여서 걱정도 됐지만, 젊은 날 하고 싶은 귀한 일을 가로막지 못했다. 1년을 그렇게 잘 다녀왔다. 그리고 졸업 후 취직하더니, 집에서 45분 남짓한 거리의 회사를 더 가까운 곳에서 다니겠다며 또 집을 나갔다.

그렇게 혼자 살기에 익숙해진 딸, 그리고 일찍이 떠나보낸 딸아이가 이제는 독립하는 정도가 아닌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됐다. 아, 이제 아내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혜를 입으면 엄마도 되겠다 싶으니 참 감사하다.

성경적 원리는 자녀를 떠나보내야 한다. 가정 문제의 대부분이 떠나보내지 못해 생기는 일이 아닌가? 떠나보낸다는 것은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그리고 잘 키운 내 자신의 노력에 대한 당당함과 그렇게 키운 자식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

이제 기대한다. 하나님의 은총이 나를 통해 그 아이에게 임했다면, 이제는 그 아이를 통해 내게 임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를 통해 이루는 가정은 내 집에 존재하던 역기능을 잘 극복하리라는 기대다. 그렇다. 잘 키우려고 애썼지만 아버지의 역기능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하니 참 미안하다. 그래서 그것을 거울삼아 잘 살아주기를 기대하며 축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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