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환경 위기 앞에서 성경이 말하는 ‘자족의 가치관’ 따라 금욕과 절제 실천해야
바울의 생태 감수성을 오늘날 한국교회가 본받아 창조세계 보존과 회복 앞장서자

“창조세계 보전과 회복은 총체적인 구원 문제”
 

총회기후환경위기대응특별위원회(위원장:배만석 목사)가 3월 3일 총회회관에서 창립 후 첫 포럼을 개최했다. 기후위기 문제와 관련한 우리 총회의 첫 공식 행사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번 세미나에는 총신대학교 송준인 교수가 ‘그리스도인들의 기후환경위기 대응’을 주제로, 한국교회생명신학포럼 이박행 총무가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실천 지침’을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본지에서는 두 주에 걸쳐 해당 발제의 요지를 정리해 소개한다. <편집자 주>

1. 현상: 상처 입은 지구별

로마서 8장 21~22절에서 바울은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말한다. 사도 바울의 생태적 감수성이 놀랍기만 하다. 바울이 보는 세상이 그러했을진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피조물이 신음하며 탄식하고 있다. 세상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오늘날의 절반이었을 때가 언제였을까? 정답은 1965년이다. 만일 오늘날 굶주리는 사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줄을 선다면, 그 줄은 얼마나 길까? 놀랍게도 정답은 지구를 13번 돌만큼이다. 어깨 폭이 60cm일 때 8억5000만을 곱하면 약 52만km가 된다. 동물이나 식물의 한 종이 멸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학적으로 믿을 만한 수치에 따르면 하루에 3종, 즉 8시간에 한 종씩 사라진다. 열대의 숲은 매년 어느 정도의 비율로 파괴되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정답은 남한 면적만한 넓이로 매년 10만㎢ 정도가 파괴된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 심각해지는 기아 문제, 생물다양성의 감소, 삼림 파괴, 물의 부족과 오염, 땅의 황폐화, 늘어나는 쓰레기, 에너지 소비의 증가, 산성비, 지구의 기후 변화. 이러한 것들은 생태계가 쏟아놓는 긴 탄식의 목록이다. 우리 지구별이 신음하고 있다. 지구과학자인 E. G. 니스벳은 지구의 상태를 다룬 연구에서 지구의 환경 변화와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지구는 상처를 입고 있으며, 그 상처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분명하다. 고발의 내용은 전 인류와 동물과 식물의 안녕을 위협할 수준까지 심각해지고 있는 그 상처의 책임이 인간이 과거와 현재에 저지른 일에 있다는 것이다.”

2. 신학: 생태신학의 성경적 기초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5차 WCC 총회는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이것을 신학과 교회의 핵심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 위기상황을 성경적인 창조신앙에 근거한 생태학적 신학으로 극복할 것을 촉구했다. 이것은 생태학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을 최초로 공식 표명한 것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생태학적 성경해석이 시도됐다.

‘생태 정의’(Eco-justice)라는 말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말이다. 그것은 정의와 생태학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며, 인간의 생존이 그 두 가지 문제를 다루는 것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확신에 근거한다. 생태 정의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제시한다.

생태 정의라는 말은 경제적인 문제들과 생태학적 문제들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범주가 아니라 동일한 문제의 두 가지 측면, 즉 모든 피조물의 지속 가능한 복지를 다루는 두 가지 측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생태 정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건강한 생태계와 정의를 보호하고 증진시킨다. 생태 정의라는 단어에 대해 윌리엄 깁슨(William E Gibson)의 말을 들어보자.

“생태 정의는 번성하는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복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번성하는 지구 위에서만 인류의 복지가 가능하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식량이 풍족하게 생산되는 지구, 모든 사람이 마시기에 적합한 물과 숨 쉬기에 적합한 공기와 계속해서 공급되는 숲이 있는 지구, 대체 자원을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가장 중요한 용도에 가장 오래도록 아껴 쓸 수 있는 재생 가능한 자원이 있는 지구여야만 인류의 복지가 가능하다는 진리를 수용하는 것이 바로 생태 정의이다.”

창세기 1장에는 세상이 선하다는 하나님의 판단에 초점이 맞추어진 하나의 윤리적 원리가 나온다. 우리 인간은 광대하고 멋진,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피조물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다.(창 1:31)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자연이 저주를 받았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연에 의해 위협을 받고 살아가고 있어서 자연에 대항해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자연을 파괴시킨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환경 훼손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다행스럽게도 생태 정의를 위한 성경 전체의 조망은 구원과 약속과 소망과 관련돼 있다. 그러므로 피조물 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언제나 구원과 약속과 소망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사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은 피조물 전체를 위한 것이다.(롬 8:19~24)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더불어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될 소망을 갖고 살아간다.

3. 실천: 생태계 위기와 교회의 역할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은 1972년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국제연합 인간환경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에 의한 권고를 받아, 같은 해 제27회 국제연합(UN) 총회에서 결정됐다. 한국교회의 일부는 세계 환경의 날을 기념해 대개 6월 첫째 주일을 환경주일로 정해 지키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 년 중 환경과 관련하여 주일을 지정해 지킨다거나 특별한 행사를 갖는 경우는 한국교회 내에, 특히 우리 교단 내에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교회에서는 환경 문제에 대해서 무엇보다 환경 의식화 교육에 앞장서야 한다. 계속되는 대형 환경 사고와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로 인해 일반인의 환경 의식이 확산되는 것 같다. 동네마다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환경 강좌도 자주 열린다. 그러나 여전히 환경의 질은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날로 악화되는 환경에 불평하며 환경보전을 위한 봉사와 희생, 불편의 감수는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환경 의식화 교육은 학교나 대중매체에 의한 환경계몽과 더불어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성경은 자족의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다. 잠언 30장 8절에서 아굴은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이방인의 행태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는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교훈한다.

오늘날 인류는 지구 환경 위기에 직면해서 금욕과 절제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구원론적 의미에서 즉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윤리적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윤리적으로 자연세계나 물질세계와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논증한다.

4. 결론과 제언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외쳤다. 우리도 생태계 위기로 인해 지구가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그다지 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언자적 입장에서 회개를 외쳐야 한다. 그리고 지금의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부르짖어야 한다.

탄소중립, 온실가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 생태계의 위기, 지속가능성 등은 이제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사도 바울은 피조물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생태감수성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될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러니까 창조세계의 보전과 회복은 총체적인 구원의 문제이다.

이제 우리 교단에서도 이 일에 구체적인 대안을 세워서 실천해야 할 때가 됐다. 아니,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제라도 교단에서는 생태계 위기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한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간단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신학 강좌를 개설하고 유능한 학자를 양성해야 한다.
둘째, 총회에서는 기후변화와 생태계 위기 대응 부서를 상비부로 두고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셋째, 각 교회에서는 제직회 부서에 환경절제부를 설치하여 금욕 절제 검소 절약 운동을 통해 환경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넷째, 세계환경의 날인 6월 5일을 기준으로, 대략 6월 첫째 주일을 전국 교회가 환경주일로 지정하도록 널리 홍보하고 각 교회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게 한다.
다섯째, 지속적인 환경 교육을 총회 차원에서 주도해 실시하고, 각 교회에서도 환경 청지기 양성에 힘쓰게 한다. 일례로 환경에 관한 소책자를 제작해 각 교회에 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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