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1심 뒤집어 동성커플 부당 대우 인정
교계 등 "자의적 가치 판단…법 질서 어지럽혀"

동성 커플이 동거 중인 상대방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을 주장해 온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동성혼 법제화까지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보수교계를 중심으로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법 체계를 무시한 자의적, 편향적 판결”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3부(재판장:이승한, 심준보, 김종호)는 2월 21일 소 모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앞서 소 씨는 동성인 김 모 씨와 2019년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 씨의 피부양자로 등록됐다. 그러나 8개월 뒤 공단은 두 사람이 동성인지 몰랐다며 업무 처리에 착오가 있었음을 당사자에게 통보하고 피부양자 자격을 무효화했다. 그러자 그는 “실질적 혼인 관계(사실혼)인데도 동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격을 부인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고, 지난해 1월 1심 재판부는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이번 2심 재판부는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동성인 두 사람의 결합을 사실혼 관계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동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혼 배우자 집단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성 관계인 사실혼 배우자 집단에 대해서만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대우”라고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선고 직후 김 씨는 “사법체계 안에서 우리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는 소감을 전했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들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히며, 동성 부부의 권리를 인정한 첫 판결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더 나아가 “‘동성혼 법제화’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라며, 사법부의 판단에 따른 입법부와 행정부의 법적, 제도적 보완을 요청하고 나섰다.

보수교계를 중심으로 반동성애 진영에서는 동성커플의 사실혼을 인정하는 듯한 초법적인 이번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교회총연합(대표회장:이영훈 목사, 이하 한교총)은 22일 논평을 내고, 이번 사안이 ‘동성 커플의 피부양자 자격 인정’이라는 단순한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한교총은 혼인과 가족생활을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설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헌법 제36조 1항과 혼인을 “‘1남 1녀’ 간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으로 규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언급하며, “현행법의 해석에 전념해야 할 법원이 헌법 명문의 규정에 반할 뿐 아니라 상급심인 대법원 판결에도 어긋나는 소위 편향적 판결을 하는 것은 실정법 국가인 우리나라의 법질서를 어지럽히는 월권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만 확정 판결이 아닌 만큼,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등에 맞서온 복음법률가회(상임대표:조배숙)와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대표회장:김운성 목사)등도 규탄 성명을 발표했고, 이들 중 일부는 국회와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여는 등 교계를 중심으로 반발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교계뿐 아니라 이번 판결을 일반화해 국가가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처럼 해석하는 데 대해서는 경계를 나타내는 의견도 많다. 무엇보다 확정 판결이 아닌 만큼 마치 법원이 동성결혼을 인정했다는 식의 해석도 무리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판결 직후 공단은 상고 의사를 밝혔다. 다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번 판결 이후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만큼,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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