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재벌가의 가족들은 여행을 갈 때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가족이 각각 다른 여행지, 다른 날을 선택하는 것이 비서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도 한다. 혹시라도 있을 사고를 대비한 조치란다. 가족이 모두 사고를 당하면 그 이후 처리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각각 떠나는 그 여행은 재미있을까? 정말 행복할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KTX를 타고 부산에 가면서 지루할 수도 아니면 재미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혼자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난 어디든 아내와 함께 갈 때가 즐겁다.

지난 주간, 설악산과 경남 하동에서 각각 이랜드 직원 수련회가 있었다. 설악산은 아내가 운전하는 차로 동행했는데 2박3일 내내 즐거웠다. 바로 이어 하동의 수련회는 시외버스를 타고 혼자 오갔다. 3시간 반이 걸리는 길이 재미도 없었다. 생각하고 워드 작업하며, 심심하게 오갔다. 여유로운 2박3일이었지만 쉬는 시간에도 별 재미는 없었다. 외로운 산책, 고독한 글쓰기 정도였다. 무료하지는 않았지만, 즐겁지 않은 까닭은 곁에 함께할 그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이기에 방해받지 않고 일을 많이 한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함께 있었다면 걷는 시간도, 차밭 한가운데서 마시는 차도 훨씬 풍미가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주님이 곁에 계신다는 믿음으로 위안을 삼았다.
흔히 ‘동고동락’이라 표현한다. 결혼생활이 그렇고, 가족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함께 즐겁고, 같이 힘들고. 그래도 함께 겪기에 더 즐겁고 또 덜 힘든 것이리라.

곁에 있기에 든든하고, 자주 보기에 행복하다. 함께 먹는 밥이 맛있고, 함께 누운 그 자리가 편안하다. 그래서 늘 함께 있고 싶고, 그의 아픔을 같이 슬퍼하고, 그의 즐거움에 순진한 웃음으로 함께하는 그 삶이 행복이다. 힘든데 행복하고, 웃는데도 불행할 수 있다. 힘들어도 또는 웃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 덕일 것이다.
코로나19가 지난해 말에 날 붙잡았다. 그렇게 확진된 다음날 아내도 이 코로나19에 합류했다. 그런데 그 걱정스럽고 힘든 코로나19도 함께 앓으니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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