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부흥운동의 불씨는 한국교회 초기에 있었던 1903년의 원산 부흥운동,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정부 발표 통계에서 한국교회 교인 수는 1973년 빌리그래함 전도대회가 열릴 당시 300만명, 75년에 약 400만명, 1980년에 760만명으로 60년대 이후 매년 10만명씩, 70년대 이후에는 매년 60만명씩 증가했다. 2021년 인구비례 20%가 한국교회 교인수로 추정하는데 정확한 통계일까 싶다. 전 세계 50대 대형교회 중에 한국교회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그것도 1위부터 10위까지 한국의 대형교회가 차지했다고 한다. 과연 이 일이 주님 앞에서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는가? 한국갤럽 조사에서 비종교인 호감도는 불교 20%, 천주교 17%, 기독교 6%로 보고됐다.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는가? 전 세계의 교회지도자들이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국교회를 방문한 때가 있었다. 세계의 교회지도자들이 한국교회를 돌아보며, 눈으로 확인한 부흥의 원동력은 바로 새벽기도였다. 그렇다. 한국교회 부흥의 힘은 새벽기도의 힘이다. 한국교회 부흥기에 한국교회는 금요철야기도 산기도 등 기도의 불길이 활활 타 올랐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영적계엄령을 선포해야 할 상황이다. 열정을 잃고 미지근한 신앙(라오디게아)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이를 경고하는 사이렌을 울려야 할 때이다.

주일저녁예배 대신에 주일오후예배로 변경해서 드리는 교회들이 등장하더니 지금은 거의 모든 교회가 주일저녁예배 대신에 주일 오후 1시, 2시, 3시 정도에 예배를 드리면서, 주일오후예배로 변경했다. 어떤 목적과 의도에서 주일저녁예배를 주일오후예배로 변경했는가? 변경 후 의도한 바 결실이 있는가? 목적을 성취했는가? 또한 주일오후예배로 변경하면서 성도들의 신앙에 유익한 영향을 미쳤는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변화였으며, 성경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도리어 한국교회의 약화를 가져오는 엄청난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주일저녁예배를 오후예배로 변경하는 것은 주일성수 개념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주일성수를 율법의 산물이라 하며 쓰레기통에 버려질 낡은 부산물로 전락시킨 듯하다.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일요일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주일은 주님의 날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주일은 당연히 구별된 날로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주일을 휴일로 생각하며 주일저녁예배를 주일오후예배로 변경한 그 속에 주일성수 신앙이 젖어있을까? 주일성수 의식이 존재할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주일성수를 철저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르쳤다. 미국의 대표적 신학자 찰스 하지 박사는 “주일성수를 무시할 때 가정과 사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예배모범은 ‘주일성수’를 강조하면서 1장 2항에 주일을 “종일토록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신대 박용규 교수는 필자가 가졌던 의식과 동일하게 한국교회의 영적 침체가 ‘주일성수 무시와 주일저녁예배 폐지’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청교도들과 한국교회 신앙의 선배들은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가장 귀중한 신앙으로 여기며 주일성수와 예배를 철저하게 지켜왔다. 그런데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과 교수들은 ‘철저한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율법주의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그 결과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주일성수와 예배의 신앙을 거의 포기한 상태에 이르지 아니했는가? 그리스도 재림의 시각이 임박한 때에 교회는 더더욱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나가는 일에 목숨을 걸어도 결코 지나치지 아니한 일일 것이다.

한국교회가 대내외적으로 영적 파워를 가지며 힘을 키우는 일은 신앙의 본질에 충실함에 있을 것이며 한국교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다. 교회가 사회적 트렌드를 좇아가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예배의 초점, 신앙의 초점이 사람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구약의 상번제, 초하루(월삭), 그리고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날마다 주의 전에 모이기에 힘썼던 일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일에 우선해야 할 일은 무너진 주일저녁예배를 다시 수축하는 것이다. 한국교회 초기에 믿음의 선진들이 최상의 주일예배 모임을 생각한 끝에 주일낮예배와 주일저녁예배로 모였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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