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청년 어우러진 사회적 기업 '요벨'
탈북민 정착 자립 돕는 대표 박요셉 집사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교회는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두고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친 70년 등 성경 속 70의 희망적 의미를 부여하며, 기대에 부푼 바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려오던 ‘정전을 넘어 종전으로’, ‘평화 협정’ 등의 듣기 좋은 말은 쏙 들어가고 이제 미사일과 무인기, 핵과 같은 무서운 단어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먼저 온 통일’이라던 3만3000여 탈북민들은 여전히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 전 탈북민 사망자 10명 중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수많은 탈북민이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탈북민 상담자로 정착을 돕던 탈북민조차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다시 평화, 다시 통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온 통일’이 남한 사회에 잘 뿌리내리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로 보인다. 남북한 청년들이 어우러져 다투고 인정하고 화해하며 작지만 큰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기업 ‘요벨’을 주목한 이유다. <편집자 주>

 

“벌써 10년이 흘렀군요.”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두고 마주한 탈북민 박요셉 집사(뉴시티광염교회)는 10년 전을 떠올렸다. 그는 정전협정 60주년이었던 2013년, MBC 특집 다큐멘터리 <DMZ에서 베를린까지>에 출연했다. 자신과 같은 탈북 청년 8명과 또 남한 청년 15명이 함께 분단의 현장인 DMZ에 모여 공산주의 흔적이 남아있는 동유럽 국가로의 대장정을 떠난 것. 당시 24명의 남북 청년들이 써 내려간 평화의 여정은 독일 통일의 상징,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것으로 마쳤다.

그리고 10년, 청년 박요셉은 이제 사랑하는 아내와 토끼 같은 쌍둥이 두 딸, 그리고 귀여운 막둥이 아들까지 식구들을 품은 40대 가장이 됐다.

은행 사내 카페 두 곳을 기반으로 탈북민들의 자립과 안정을 돕는 사회적 기업 ‘요벨’. 좁은 공간 안에서 탈북 청년들과 남한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양보하며 하나가 돼 간다.
은행 사내 카페 두 곳을 기반으로 탈북민들의 자립과 안정을 돕는 사회적 기업 ‘요벨’. 좁은 공간 안에서 탈북 청년들과 남한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양보하며 하나가 돼 간다.

“한반도, 평화, 통일과 같은 단어를 듣기만 해도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움이 있었는데, 그때보다는 절절함이 많이 식은 것 같아요. 육아하느라 또 분주한 삶에 치여 멀어졌나 싶으면서도, 탈북민인 제가 이 정도라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더 하지 않을까 싶어 안타깝습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까지만 해도 모두의 가슴을 뛰게 했던 평화 담론이 이제는 사라져 버린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북한에서 전문대학에 다니다가 1999년 홀로 탈출한 박요셉 집사는 5년 뒤 남한에 입국, 올해 햇수로 20년 차가 됐다.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이름 뒤에는 대표라는 직함이 붙었다. 2014년 기업은행이 사회공헌사업으로 추진한 탈북민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경기도 용인과 서울 한남동 두 곳에서 사내 카페를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단순한 영리 추구뿐만 아니라 탈북민의 자립과 안정을 도와 2019년에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지인을 보며 정착 모델을 만들 결심을 했어요. 언젠가는 함께할 남과 북인데, 나중에 통일됐을 때 먼저 온 탈북민들이 잘 살지 못하고 있다면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탈북민들을 보고 ‘잘 어울려 살고 있었구나. 우리도 잘 살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을 갖도록 하고 싶었죠.”

감추지 않아 드러난 가치

그가 세운 카페이자 사회적 기업의 이름은 ‘요벨’이다. 희년을 기념해 불던 기쁨의 나팔 소리를 뜻하는 히브리어로, 통일을 준비해 가는 사람들의 희년 공동체를 소망해 지었다. ‘통일을 준비해 가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에서는 탈북민과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 구성원은 적지만 비율은 6:4로 탈북민들이 오히려 더 많다. 3만3000여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떻게든 적응해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 속에, 이 작은 차이는 생각보다 큰 변화를 불러왔다.

“탈북민들이 있는 곳 어디든 문제가 발생하면 당연히 자신이 한 행동이 모두 잘못으로 규정되는 만큼 본인을 바꾸려 무던히 노력합니다. 소수자로서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요벨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간극을 좁혀 나가기 위해 함께 배려하고 양보한다는 것이 큰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중에는 반복된 상처에 자신이 탈북민임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미 시작부터 신뢰가 어긋나니 자신의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호소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요벨에서는 자신을 숨길 이유가 없다. ‘힘들다. 도와달라’를 얼마든지 요청할 수 있다. ‘나’를 드러내기 어려운 남한 사회에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내보일 수 있는 곳. 내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며 존중해 주는 곳. 요벨에서 탈북민들은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나간다.

사내 카페라는 장소적 특징도 탈북민 직원들에게는 큰 장점이 됐다. 남한사람들과 깊은 관계 형성이 어려운 일반 카페와 달리 한정된 회사의 직원들이 1년 내내 단골이 되기 때문에 고객들과 더 밀접해지는 기회를 제공했다. 실제로 요벨에서 일하는 탈북민들과 친해진 은행 직원들이 함께 여행을 간 적도 있다.

때론 갈등도 있지만, 오히려 갈등이 하나 됨의 비결이라 말하는 대표 박요셉 집사. 그는 남북의 청년들이 이곳에서 자신을 전부 드러내고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해 자신 있게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때론 갈등도 있지만, 오히려 갈등이 하나 됨의 비결이라 말하는 대표 박요셉 집사. 그는 남북의 청년들이 이곳에서 자신을 전부 드러내고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해 자신 있게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관계를 만든 건강한 갈등

물론 이곳에서도 갈등은 일어난다. 평생을 다른 체제와 문화 속에서 살아왔기에 어찌 보면 갈등은 당연하다. 오랜 기간 교회에서 북한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많은 탈북민 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있던 남한 직원조차 함께 일하던 탈북민 직원의 의사소통 방식에 상처받고 대표에게 메일을 보내온 적도 있다.

“갈등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갈등이 일어났다는 건 문화와 문화가 서로 부딪쳤다는 이야기니까요. 오히려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게 문제죠. 서로를 포장하고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면 갈등은 피할 수 있겠지만 관계의 발전도 없을 거예요.”

박요셉 집사는 4~5평의 좁은 공간에서 남북의 청년들이 갈등을 겪고 또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교회 내 탈북민 공동체에 진짜 있어야 할 것은 갈등임을 깨달았다. 시혜적인 시선, 동정심으로 이뤄지는 좋은 만남보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형제자매 되는 길임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한국교회 안에 탈북민 공동체라고 하면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예배하고 성경 공부하고 기도 모임 갖고 밥 먹는 게 전부입니다. 이제 그것을 뛰어넘는 일상에서부터 함께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 만남이 필요합니다. 교회 자체도 그런 만남이 없는데 사회에 공동체성을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탈북민과의 갈등이 일어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전협정 70주년의 기대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동화 <미운 오리 새끼>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을 오리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백조처럼, 많은 탈북민이 남한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자신을 남한사람이라고 생각하다가 자괴감에 빠지고는 합니다. 이제는 탈북민들 스스로 자신이 오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반대로 오리의 무리인 남한 사회도 탈북민들을 향해 ‘너는 백조야.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야. 우리는 같이 지낼 수 있어’라는 상호 존중감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 동등한, 교회 언어로 하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가다 보면 그게 평화고, 그게 통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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