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북정책이 매우 강경하다.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확실하게 응징하고 보복하겠다거나, 9·19군사합의 전면 중지를 시사하는 대통령의 선언도 나오고 있다. 연일 미사일 발사, 무인기의 영공 침범 등 대남도발이 계속되고 있으니 정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호한 태도로 북한의 도발로부터 나라를 든든히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교회의 입장은 세상과 달라야 한다. 성경적이어야 한다. 누가복음의 비유 중 집 나간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드러난 말씀이 있다. 변함없고 지치지 않는 사랑으로 아들의 귀환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멀리 등장한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끌어안고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한 큰아들, 즉 형은 불평한다.

교회의 대북관은 ‘형’이 아닌 ‘아버지’의 심정이어야 한다. 기다리고 인내하며 그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잔치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큰아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동생을 보듬는 형의 아량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계산뿐이니 안타깝다.

남북관계에서 우리는 교회의 입장을 바로 세워야 한다. 정확하게 계산하고 냉정하게 대응하는 것은 국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교회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를 위해 하늘 아버지는 아들을 주셨고 그 아들의 희생적이고 대속적 죽음으로 교회를 세우신 것이다. 그런 교회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봐야 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이 적용되지 못할 분야는 없다. 그에 따라 바울 사도는 원수가 주릴 때 먹이고 목마를 때 마실 수 있게 하라고도 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적 관점이나 흐름이 아닌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주님이라면 하셨을 그런 자세로 신앙적 삶을 실천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가 아니라, 보듬고 안아주고 인내하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조정되고 지켜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의 태도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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