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네가 이 편지를 읽을지 말지는 네 자유지만, 나는 이 편지를 배달해야 한다. 우체부의 숙명 같은 거지.”

‘리틀 포레스트’라는 따뜻하고 은근히 재미도 있어 조용히 빨려 들어가게 되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갑자기 집을 비우고 어디론가 떠나, 주인공 딸(김태리)을 당황하게 한 엄마에게서 온 편지를 반송해달라는 딸에게 우편배달부가 한 말이다.

영화 속 우체부는 참 당당해 보이고, 편지 한 통을 가볍게 여기는 누군가를 부끄럽게 한다.

2023년 새해를 맞으며 나에게 숙명 같은 일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마음 깊이 생각해 왔는지 스스로 묻는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숙명 같은 나의 일, 그렇다. 사명!

내가 해야 할 일도 오직 전달하는 것이니 우체부가 숙명처럼 여기는 그런 역할 아닌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난 반드시 배달해야만 하는 주님의 우체부여야 한다. 그럼에도 주저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혹시 거절할까 싶어 손에 쥔 편지조차 건네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새해를 맞고 나니 목회 현장에서 일할 남은 몇 년 중 또 일 년이 줄어들었다. 목회 일선에서 뒤로 물러나야 할 때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기에 나의 숙명에 대해 더 생각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걸음과 주어진 사역을 과연 숙명처럼 여겼는지 돌아본다. 더 간절하게 숙명적인 일을 위한 마지막을 불태워야 한다는 텐션이 커지고 있다. 바울 사도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마치기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다. 그런 다짐이 그를 로마에 가게 했고 달려갈 길을 마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건다’거나, ‘숙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움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다. 숙명이 복임을 알고 기쁨으로 받아들이니 즐겁고 또 즐겁다. 재미도 있다. 매일 만나야 할 사람들, 선포해야 할 말씀들,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에 쏟아지는 은혜들이 날 행복하게 한다. 그러니 나보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이런 자부심이 있어 사역이 몇 년 남지 않은 2023년이라는 새해를 맞았지만 조바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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