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때때로 2시나 3시에 잠이 깬다. 그러면 예배당으로 직행, 집에서 예배당까지 걸어가는 7분 정도의 시간에 온갖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루엣이다. 조금은 애처롭다.

신문 배달 또는 택배차량을 세워놓고 짐 나르는 분주함, 재활용품을 싣는 아저씨들, 청소차 등이 힘겹게 다니고 있다. 또 경찰 순찰차도 곳곳에 눈에 띈다. 가끔은 우리 예배당 앞에도 정차돼 있다. 움직이는 파출소로 운영하는 모양이다.

아파트 창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이 거의 없는 모두가 잠든 시간, 피곤함을 풀고 새 아침을 맞을 준비를 하는 꼭두새벽의 풍경은 이렇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새벽배송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새로운 시장이다. 그 새벽배송 시장 규모가 2021년 2조5000억원. 그런데 오는 2023년에는 11조9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니 새벽 풍경은 더 분주한 실루엣으로 가득할 것 같다.

이렇게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돌아간다. 그래서인지 내가 잠든 시간에도 깨어계시고 또 일하실 하나님을 떠올린다. 그분 덕에 잠을 편히 잔다. 그런데 잠을 일찍 깨는 때가 많은 나는 그분의 영역에 너무 끼어드는 것 같아 스스로 측은하다는 생각도 든다.

또 다른 풍경이 있다. 4~5시에는 어디로 보나 새벽기도를 가는 모습, 6~7시면 그 기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걸음도 눈에 띈다. 기도를 위해 새벽길을 나선 모습은 어딘가 다르게 느껴진다.

성경을 검색하니 ‘새벽’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새벽에 출애굽의 역사가 일어나고 새벽부터 여리고성을 돌았다. 다니엘을 걱정하는 왕은 새벽에 사자굴을 찾고, 요나의 그늘을 만들어주는 박 넝쿨을 벌레가 새벽에 갉아먹었다. 하나님은 새벽에 우리를 도우시고, 예수님은 새벽에 기도하셨다. 새벽이 그냥 쉬기만 하는 시간은 아닌 것이다.

나의 새벽은? 잠에서 깬 나는 예배당에 나가 앉는다. 그리고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나의 활력이 살아남을 느낀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현실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누군가는 새벽부터 힘을 쓰는데 난 이 새벽에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그래서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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