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추모 공간으로 변모한 이태원 지역
용산지역 교회 진솔한 사랑과 위로 나눴다

“지금이 바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기도할 때”

참사가 벌어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지금도 국화꽃이 놓이고 있다. <br>
참사가 벌어진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지금도 국화꽃이 놓이고 있다.

156명의 생명이 스러져간 참사 발생 닷새 뒤인 11월 3일 오전,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오르는 계단에 다다르자 향냄새와 국화꽃의 향기가 풍긴다. 향기는 감정을 자극한다고 했던가. 슬픔의 향기가 몰려왔다. 계단을 미처 다 오르기도 전에 좌우로 당시 현장에 있었던 듯한 이들의, 함께 살아나지 못했다는 미안함의 감정이 가득 담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쪽지들이 눈에 띄었다. 하나하나 읽다보니 국화꽃이 가득한 그날의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태원과 어울리지 않는 텅 빈 거리를 마주하는 순간, 뉴스와 SNS를 통해 밤새 전해진 급박했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그 순간에도 1번 출구 앞에는 국화꽃이 하나둘 쌓여가고 있었다.

몇 발짝 걸음을 옮기자 참사 현장을 알리는 주황색 폴리스라인 뒤로 미처 정리되지 못한 좁은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핼러윈 주말 밤을 즐기기 위해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이 골목으로 향했을 이들, 또 이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 했을 수많은 무리들. 골목길이 이어주는 세계음식문화거리는 여전히 핼러윈데이를 이틀 앞둔 10월 29일 밤에서 멈춰있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소속 100여 상점은 국가애도기간 자발적으로 휴점하고, 애도의 메시지를 내걸었다.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골목과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편지들, 이태원은 멈춰선 채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큰 길로 내려와 경찰차와 언론사 보도차량이 줄지어 있는 도로 끝으로 향했다. 이태원이 시작되는 이곳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참사 희생자’인지 ‘사고 사망자’인지 하는 싸움으로 슬픔을 낭비하고 있을 때, 모르는 이들을 위해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며 진심으로 추모하려 찾아온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등굣길에 들렀다는 가방 멘 대학생에서부터 유치원 가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온 외국인 아버지까지, 국적불문 연령불문 조문 행렬이 끊임없이 계속됐다. “손주 같은 젊은이들이 꽃 한 번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져버렸다는 게 너무 슬퍼 나왔다”는 두 어르신은 “국화꽃 하나 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더욱 속상하다”며 조문을 마치고도 한동안 분향소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때, 어르신들 곁으로 다가가 손에 따뜻한 차를 쥐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태원이 있는 용산 지역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와 성도들이었다. 용산구교회와 구청협의회(회장:지성호 목사) 소속 교회들은 한국교회봉사단(이사장:오정현 목사)과 함께 11월 1일부터 5일까지 분향소 옆을 지키며 조문객들과 봉사자들, 경찰들에게 커피와 차를 건넸다. 교회도 교단도 다르지만 ‘이태원 참사로 숨진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인사를 전하며 슬픔에 함께하는 것, 지역의 교회로서 고심 끝에 표한 애도의 방식이었다. 이날 봉사에 참여한 한남제일교회 한 성도는 “동네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일에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며 “하나님의 위로가 유가족들과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슬픔을 나누는 일에 함께 하고 싶어 거리로 나선 지역 교회들은 따뜻한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매일 아침저녁 장비 설치와 철수를 도맡아 하며 봉사에 앞장선 박승남 목사(후암교회)는 “처음에는 이 일이 생뚱맞게 느껴질 수 있고, 또 이런 순간을 이용해서 교회가 드러내는 것으로 자칫 오해를 받을까 염려됐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와서보니 모든 것이 기우였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여기 와서 분향하는 이들 열에 여덟아홉은 울고 나오는데, 그들 대부분은 희생자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목사로서 옆에서 지켜보며 ‘세상 사람들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위해서 저렇게 같이 울어주고 함께 아파하는데, 우리는 저들만큼 세상의 슬픔에 안타까워하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면서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사람들을 세상에 그대로 내버려 두신 이유는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아파하는 사람들,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이웃이 돼주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나라에서 정한 애도기간은 11월 5일을 끝으로 종료됐다. 그러나 슬픔과 아픔은 재단한 듯 끊어낼 수 없다.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또 아파하는 길 곁에 서 있는 진정한 이웃, 한국교회가 세상에는 아직 필요하다.

참사 트라우마, 교계 돌봄 나서

무료 심리상담… “비난ㆍ판단 말고 관심 가져야”

이태원 참사 이후 사상자와 가족, 현장에 있었던 이들 등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이들 외에도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영상을 시청한 많은 국민들도 공포와 우울감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대응이 요구된다. 정부가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중심으로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활동에 나선 가운데, 교계도 상담 등 긴급 돌봄을 전개한다.

한국상담서비스네트워크(이사장:이상억)는 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회장:오화철), 한국목회상담협회(회장:김기철)와 긴급 심리상담을 실시한다.

이번 긴급심리지원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트라우마 증상(심리적, 신체적)’의 완화를 목적으로 한 5회기 단기 상담이며, 비대면(zoom)으로 진행된다. 1차적으로는 피해생존자가 대상이지만, 이번 사고로 직간접적 경험과 심리적, 신체적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 누구나 상담이 가능하다. 상담은 올해 12월 말까지 진행되며, 11월 말까지 신청할 수 있다. 더불어 한국상담서비스네트워크는 이번 상담을 위해, 재능기부로서 역할을 감당할 전문 상담사들을 모집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세 단체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사장:백종국·이하 기윤실)도 참사 트라우마로 어려움을 겪는 기독청년들을 위한 무료 특별상담을 운영한다. 아신대학교 상담연구소, 심리상담센터 쉼(SHIM), 혜화;숨 심리상담센터가 협력한다.

대상은 당시 현장에 있었거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기독청년들을 우선으로, 불안과 초조, 우울, 화, 수면장애, 호흡곤란, 두근거림, 긴장, 반복적 기억 등 정서적·신체적 증상이 있는 경우도 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상담은 서울 시내 상담실 또는 온라인(zoom)으로 주 1회 50분씩 총 5회기로 나눠 진행하며, 기윤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이 가능하다.

기윤실 김현아 사무국장은 “교회 안에 비난의 목소리가 있어 마음이 어려운데도 꺼내놓고 얘기하지 못하는 기독청년들을 기다린다”며 “교회도 판단보다는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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