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빵집 등 강아지를 동반하기 어려운 매장에 들르기 위해서 강아지에게 “기다려!”라는 명령을 한다. 그때마다 강아지는 그 자리에 앉아 꼼짝 하지 않고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5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서 일을 마치고 나오면 반갑게 일어선다. 그리고 다시 함께 걷는다.

강아지는 어떻게 조용히 내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 있을까? 나도 참 궁금하다. 강아지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 내 강아지는 한 번도 내게 배신당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강아지에게 물어보아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그렇다. 기다리면 반드시 나타나는 것을 늘 경험했다. 그러니 기다리라고 하면 그냥 믿고 기다리는 것이리라. 시간이 얼마가 되든지 반드시 나타날 주인에 대한 신뢰랄까?

이런 강아지의 기다림을 보면서 ‘나’와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내게 “기다려!”라는 명령을 한다. 그러면 난 늘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가? 그렇지 못한 나다. 기다리는 것 같으나 조바심을 내고, 때로는 다른 길을 찾기도 한다. 내 생각대로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기다려야 할 곳에서 벗어나고야 만다.

더욱이 하나님께 원망스러운 마음을 갖기도 하고 투덜거린다. 왜 기다리라는 사인 앞에 난 조용히 기다리지 못할까?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는 하나님이시다. 늘 뒤에 가서 보면 내게 유익하게 하신 하나님이다. 그럼에도 기다리지 못하고 꿈틀거리는 이 조바심은 무엇일까? 그렇다. 난 강아지보다 너무 똑똑하고 온갖 경우의 수를 다 계산할 줄 안다.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머리를 많이 굴리다 보니 하나님의 생각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때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강아지처럼 단순해지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먹으면 만족스럽고, 함께 산책하면 신나고, 안아주면 마음 든든하고, 혼자 내버려두면 또 혼자 놀기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단순해질 순 없는 것일까? 나의 이 똑똑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을까? 차라리 강아지라면 더 행복할 것 같은, 강아지와 산책을 마친 아침에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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