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역사는 영적 자산 … 이상욱 목사 “사명과 열정 끝까지 이어가겠다”

대수교회 출신으로 현재 담임목사 시무 중인 이상욱 목사(가운데). 왼쪽은 이홍락 장로, 오른쪽은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박영철 집사.
대수교회 출신으로 현재 담임목사 시무 중인 이상욱 목사(가운데). 왼쪽은 이홍락 장로, 오른쪽은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박영철 집사.

“고향교회를 살립시다!”

8월 15일 부안 대수교회(이상욱 목사)에서는 특별한 모임이 열렸다. 참 오랜만에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자리였다. 내년이면 설립 120주년을 맞는 교회의 기념비적인 시간을 앞두고, 고향을 지키는 교우들과 출향성도들이 뜻을 합하여 다함께 만난 것이다.

‘아내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가 잦고 물이 많아 대수리 혹은 수탁리라고도 불린 고향 마을과 모 교회는 타지로 떠난 이들에게도 언제나 그립고 정다운 존재였다.

교회 설립자인 오해근 영수.
교회 설립자인 오해근 영수.

대수교회는 일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안 최초의 교회는 1907년 세워진 당상교회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당초 고부군에 속해 있다가 부안군에 편입된 대수교회는 이보다 빠른 1903년에 시작됐다는 게 <기독교대백과사전>의 기록이다. 해당 기록에 따르면 테이트 선교사와 오해근 영수, 오덕홍 집사가 최성학의 집에서 예배하면서 대수교회가 설립됐다.

초창기 교인인 유씨 성도의 모습. 대수교회 출신들에게는 믿음의 조상들인 셈이다.
초창기 교인인 유씨 성도의 모습. 대수교회 출신들에게는 믿음의 조상들인 셈이다.

오랜 연대만큼이나 대수교회 출신들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교회가 보낸 세월 속 이야기들이다. 교회 초창기에 세워 운영한 대성학교는 해방 후 공립학교인 대성초등학교로 전환되어 3546명에 이르는 졸업생들을 배출했다. 물론 대수교회 성도들 대부분도 이 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6·25 전쟁 중에는 여섯 명의 성도가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었고, WCC 문제로 교단 분열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인 1961년에는 대수제일교회가 분립해 나가는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다. 하지만 앞의 사건은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으로 남았고, 대수제일교회와 결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하나 되는 기쁨으로 돌아왔다.

부안 대수교회의 촛불은 120주년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다. 다시금 영적 심지를 세우려는 열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대수교회 예배당 전경.
부안 대수교회의 촛불은 120주년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다. 다시금 영적 심지를 세우려는 열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대수교회 예배당 전경.

지금껏 고향에 남아 대수교회 집사를 맡으며, 마을이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영철 집사는 “어릴 적부터 예배당에서 같이 뛰놀고, 인근 천태산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래와 자갈을 퍼 나르며 예배당을 지어내는 등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기에 대수교회 출신들의 유대는 몹시 끈끈하다”고 말한다.

전현직 목회자가 30명에 이르고, 선교사가 6명에다 목회자사모 또한 18명이나 되는 등 성직에 몸담은 이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대수교회 출신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고향동네가 점점 쇠락하가고, 교회 또한 형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은 출향성도들의 마음을 늘 아프게 했다.

1950년대 대수교회의 모습. 전쟁 중에 목숨을 잃은 성도들로 인한 아픔은 영광스러운 순교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1950년대 대수교회의 모습. 전쟁 중에 목숨을 잃은 성도들로 인한 아픔은 영광스러운 순교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자신들의 모교이자 교회의 자랑이었던 대수초등학교는 2006년에 폐교되었고, 100가구가 넘게 살던 마을에는 어느새 28가구만이 남았다. 한 때 350명을 헤아리던 대수교회의 교세 역시 30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이대로 마을과 교회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보기만 해야 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들이 대수교회 출신들 사이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손수 팔을 걷어 부치고 고향을 살려보겠다고 나선 이가 바로 현재 대수교회 담임목사인 이상욱 목사이다.

천안 백석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매주일 먼 길을 달려와 함께 예배하며, 마을에 녹색농촌체험관을 건립하는 등 여러 모로 힘을 보태준 인물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 안수까지 받고서는, 기어이 올해 2월 1일 고향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이다.

설립 120주년을 앞두고 대수교회 출신 옛 성도들이 고향 마을과 모 교회의 발전을 기원하며 모임을 갖는 모습.
설립 120주년을 앞두고 대수교회 출신 옛 성도들이 고향 마을과 모 교회의 발전을 기원하며 모임을 갖는 모습.

이상욱 목사의 부임은 대수교회 출신들에게 여러 모로 큰 자극과 동기부여가 됐다. 교회를 새롭게 일으키고, 더 잘 사는 마을로 만들어보겠다는 이 목사의 의지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하나씩 거드는 이들도 나타났다. 그 결실이 8월 15일의 모임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날 모임에서는 현재 완주 큰사랑교회에서 사역하는 공인식 목사가 ‘그 때도 지금도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 카운터 테너로 활동하는 이철수 성악가는 특별공연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각자의 근황과 기도제목을 나누며, 오랜만에 성만찬 예식도 함께 하면서 신앙 공동체로서 한 지체임을 다시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이상욱 목사가 부임하면서 온 교회에 말씀묵상과 전도운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각 가정과 구역마다 기도사역이 열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사회를 맡은 이홍락 장로는 기념예배와 역사집 발간, 믿음의 가문 선정, 해외선교 사역 등 설립 120주년을 준비하는 대수교회의 현재 상황을 상세히 알렸다.

모든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대수교회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전하고, 축복하는 시간으로 이날의 일정은 마무리됐다. 다시 일어서려는 고향교회의 몸부림에 각자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보태자는 다짐을 서로 나누기도 했다.

이상욱 목사는 “단지 향수 때문만이 아니라, 고향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출신 성도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대수교회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신앙전통을 반드시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힌다.

대수교회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사명과 열정이 여전히 건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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