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최근 종영한 모방송사의 인기 높았던 드라마가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주인공인 드라마다. 그 드라마의 마지막은 ‘뿌듯함’이다. 비단 주인공뿐 아니라 드라마 시청자 모두가 느낀 감정이 아닐까 싶다.

그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자. 정규직 전환 후 우영우는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것이 불안하여, 쉽게 드나들기 힘들었던 회사 회전문을 리듬을 타며 혼자의 힘으로 통과한다. 그리고 늘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준 직장 동료에게 환한 웃음을 담아 마지막 멘트를 남긴다. “오늘 아침 제가 느끼는 감정의 이름은 바로 ‘뿌듯함’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조차도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힘겨운 일임을 깨닫게 했던 드라마다. 그렇듯 극복이 쉽지 않은 장애를 뛰어넘는 모습에 모두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따뜻한 시선과 격려 그리고 협력이 그렇게 웃게 했다. 이상하고 별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삶을 가치 있고 아름답게 바꿔주는 그 스토리는 시청하는 모두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나의 삶으로 끌어들여보았다. 난 얼마나 이 ‘뿌듯함’이라는 감정을 자주 느끼며 살까? 일반적 시선으로 보면 ‘고상하고 차원 높은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목회자다. 그런데 그런 내가 누리는 ‘뿌듯함’의 빈도는 얼마나 될까?

하루 또 하루를 보내며, 단순한 반복처럼 느끼지 않아야 한다. 또한 다른 하나의 일을 해낼 때마다 창조적 에너지가 솟아나야 한다. 그럴 때 내 속에 솟아나는 감정의 이름이 ‘뿌듯함’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생 드라마에서는 그 ‘뿌듯함’이 그렇게 쉬워 보이지 않으니, 난 더 큰 장애를 가진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나의 이런 심리적 장애는 내 속에 오랫동안 둥지 틀고 있는 욕심인 듯싶다. 그것만 털어내면 될 텐데 쉽지 않다.

그래도 나의 이 무거운 장애를 뛰어넘게 하실 주님이 곁에서 격려해주심을 느낄 수 있으니 나의 감각이 아주 무디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어디 주님뿐이랴? 나를 사랑하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인들이 있다. 그들이 나의 그 ‘뿌듯함’에 한몫 단단히 해주고 있으니 난 이래저래 복 받은 목회자다.

저작권자 © 주간기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NS 기사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