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 목사
청어람교회

대중매체들의 기사에 의하면 성소수자의 축제로 불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올 7월, 3년 만에 다시 도심에서 열린다고 한다. 필자는 지난 2019년 2월 22일자 기독신문의 동성애에 관한 기획기사에서 ‘동성애는 맘모니즘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라고 글을 썼다. 그런데 맘모니즘은 바알숭배를 모태로 하고 있으니 결국 동성애는 바알숭배가 그 근원이 되는 것이다. 바알은 우리가 상상하는 악마의 모습인 공포스럽고 무서운 모습이 아니라 그것은 사람의 욕망을 부추기며 매력적이고 화려하며 부의 옷을 걸치고 우리를 미혹한다.(렘 9:14) 

맘모니즘(mammonism)은 바알숭배 사상과 궤를 함께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나안에 이르렀을 때 바알과 아세라 그리고 아낫과 아스다롯, 몰렉, 못(Mot)과 얌(Yam, 일명 리워야단) 등 여러 가지 우상을 접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진보한 문명으로 생활하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이 우상들을 숭배하는 것을 보게 되자, 그들을 따라 바알을 섬기기 시작했다.(삿 2:11) 처음에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한 이유는 “땅의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한 것이었으나 하나님을 떠난 바알 숭배는 타락한 성적인 의식과 함께 퍼져 나갔다. 신전매춘과 자녀희생은 바알숭배가 보여주는 타락된 다른 모습이었다.(왕상 14:23~24, 대하 28:2~3)

<성서와 고고학>(에릭 H. 클라인 저, 류광현 역, CLC)에 “가나안 사람들의 신전에는 매춘을 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으며, 온갖 무절제한 성행위가 행해졌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러한 의식이 어떤 식으로든 농작물과 가축이 번성하게 해 준다고 믿었다”고 기술돼 있다. 그러한 부도덕은 틀림없이 숭배자들의 육체적 욕망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을 따라 바알을 숭배하기 시작하며 하나님이 제시해 주신 길을 떠나 타락한 이스라엘인들은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서 신전 창기와 신전 남창에 의한 매춘행위도 용인했다.(왕하 23:7). 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이나 윤리와 도덕적 규범을 제시하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레 18:2~30; 신 5:1~3)

하지만 무엇보다도 바알숭배는 사람들을 육체적으로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장악해갔다.(갈5:19~21) 대 선지자 엘리야의 갈멜산의 대결(왕상 18:19~46) 이후 바알숭배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듯 보이나 인간들의 욕망 뒤에 교묘히 숨어 있다가 타락한 천민자본주의의 손을 잡고 대중문화와 포스터모더니즘의 세상으로 과거보다 더욱 맹렬히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 바알숭배의 무서움은 동성애와 간음 그리고 온갖 변태적인 성을 미화하고 대상을 중독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고 말이다.

사탄의 “보이지 않는 세력”은 사람들을 영적인 노예로 만들기 위해 성적 부도덕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선하고 바르게 창조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바른 관계성을 왜곡시키며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이 지식인이며 이성적이고 인권주의자라고 부추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퀴어축제의 재개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바알의 역습에 대한 선명한 인식과 교회적 대안을 실행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녹여낸 성교육이나 상담들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여전히 비전문적이다. 적어도 전문적인 성교육이나 상담학을 전공한 전문가와 목회자들을 양육하여 교회현장에 세워나가야 할 시급한 때임을 각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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