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 1919~2011)이 1960년에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이란 책을 썼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향력 있는 100권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80년대 초 석사과정 중에 읽었기에 내 머리 속에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책은 거의 예언서였다. 이데올로기로 대립하던 시대는 곧 끝날 것이라고 했다. ‘포스트마르크시즘’이었다. 정말 지구상에서 마르크스의 망령은 사라졌다. 미국이 1970년대 말에 중공이라 불리던 중국과 국교를 맺었고 대만은 유엔에서 쫓겨났다. ‘이념보다 경제’라는 확실한 변화를 보인 것이다. 1990년대 초에는 구소련 체제가 붕괴되면서 이데올로기가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님을 다시 입증했다.

그렇게 세상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에 끌려가지 않게 되었다. 그 자리를 과학과 기술, 경제와 지식이 차지했고 이제는 정보통신이 이끌고 있다.

다니엘 벨의 주장처럼 이데올로기 시대가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 벨의 예언이 먹히지 않는 곳이 하나 있다. 슬프게도 내가 사는 이 땅이다. 여긴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힘이 여전하다. 정치, 경제, 사회복지 그리고 교육까지 모든 분야에 이데올로기가 꼭 끼어든다. ‘한국식 민주주의’를 생산했던 이 나라는 그 어떤 국가보다 더 독한 이데올로기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것 같아 슬프다.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특수상황이긴 하지만 이 땅의 이데올로기는 지독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선거 때는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 지긋지긋한 프레임 싸움, 국민을 둘로 확실하게 구분 짓는다. 내 편 아니면 적이 되는 지긋지긋한 프레임 싸움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남북분단의 아픔도 모자라서 또 다른 갈등을 만들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진리나 선악이 아니라면, 다른 생각을 서로 조율하며 건강한 하모니를 이뤄야 할 텐데. 이에 더하여 교회조차 프레임 싸움에 가세하는 것 같아 마음은 더욱 무겁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성경의 가르침만 좇으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역시 ‘나와 다른’ 누군가를 슬그머니 밀어내는 것 같아 깜짝 놀라곤 한다. 나만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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