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출신 바리스타 김재민 씨(가명)

“멕시코와 인도네시아 원두는 다크하고 고소한 맛이 있어요. 에티오피아산은 산미가 있고 향긋하죠. 이 근방에 커피숍이 엄청 많은데, 제 생각에는 우리 가게 커피가 최고예요.”

원두에 따른 커피 맛을 설명하는 것하며, 커피머신을 능숙하게 조작하는 것하며 전문 바리스타의 풍모가 엿보인다. 서울 청파동 로로카페 바리스타 김재민 씨(61세·가명) 이야기다. 그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영등포역과 서울역 등지에서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직장생활까지 했던 그는 삼십대 중반에 큰 고비를 맞았다.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했었는데, 1997년 IMF로 그만 사업이 휘청거린 것이다.

김재민 씨(가명)가 주문받은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삼일교회 덕분에 새 삶을 살고 있다며, 삼일교회에 대한 감사는 하루 온종일 해도 모자르다고 말했다.
김재민 씨(가명)가 주문받은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김 씨는 삼일교회 덕분에 새 삶을 살고 있다며, 삼일교회에 대한 감사는 하루 온종일 해도 모자르다고 말했다.

“사업에 실패하고, 부채도 상당했어요. 그 후로 일을 전혀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이 과거를 먹고 살면 안 되는데, 자꾸 옛날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래저래 괴로우니까 술을 많이 먹게 됐는데, 하루는 머그잔에 소주를 따라 마시는데 양손이 벌벌 떨리더라고요. 완전히 알코올 중독이었죠. 아내와 아이들과도 대화가 없어지고, 10년 정도 아내와 각방생활을 했어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가정이었죠.”

그가 집을 나온 건 2019년 초여름. 그날도 술에 취한 상태로, 그는 조그만 배낭에 주섬주섬 옷가지 등을 챙겨 넣고 집을 나왔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처음에는 영등포역 역 앞에 노숙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갔어요. 밖에서도 잘 때도 있었고, 찜질방에서 잘 때도 있었죠. 두세 달 정도 그렇게 노숙인 생활을 했는데, 어떤 분이 성공회에서 하는 다시서기센터를 소개시켜주더라고요. 다시서기센터에 갈 때는 주머니에 있는 돈이라고는 30원이 전부였어요.”

노숙인 출신 바리스타 김재민 씨(가명)는 로로카페에서 ‘마틴’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린다. 김 씨는 평소 성경공부를 할 때 마틴 루터나 마틴 로이드 존스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그것을 귀담아 들었던지 매니저가 ‘마틴’을 닉네임으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노숙인 출신 바리스타 김재민 씨(가명)는 로로카페에서 ‘마틴’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린다. 김 씨는 평소 성경공부를 할 때 마틴 루터나 마틴 로이드 존스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그것을 귀담아 들었던지 매니저가 ‘마틴’을 닉네임으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그 후 그는 서울역에서 노숙인 사역을 하던 삼일교회(송태근 목사)와 연결이 돼, 2019년 9월 삼일교회가 위탁관리하는 고시원에 들어가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으며, 삼일교회가 지난해 개점한 로로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 로로카페 직원은 총 9명. 삼일교회 간사인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노숙인 출신이다. 그는 주 30시간 근무로,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3시에 퇴근한다. 한 달 급여는 140만원가량이다.

“그전까지는 세상의 헛된 것들과 욕심에 매여 살았다면, 지금은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진다거나 하는 것에 일절 관심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서른 살 무렵까지 교회에 다녔던 그는 삼일교회와 연결된 후로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기도회도 나갈 만큼 신앙이 깊어졌다. 그는 “하나님은 나를 영등포역 길바닥에서 술에 취해 내뻗게 내버려두시지 않으셨구나.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나를 데리고 나오시는구나 고백을 하게 됐다”며 “그런 생각이 드니까 과연 하나님은 나를 어디까지 끌고 가실까 기대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생생하고도 놀라운 신앙 간증거리도 경험했다. 그는 오랜 음주 습관에 타인과의 대화 단절로 말을 할 때면 목에서 쇠 긁는 소리가 났다. 

“병원에 갔더니 목에 혹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새벽에 성경을 읽는데 갑자기 예전 목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얼마나 감사하고 눈물이 나던지….”

그는 요즘 자신의 삶은 지금 죽어도 좋을 만큼 만족하다고 말했다. 서른 중반까지는 소위 세상이 요구하는 전형적인 패턴대로 살았고, 그 후 망가졌던 20여 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시간이었으며, 삼일교회를 만난 이후의 2년 7개월가량이야말로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일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노무사가 돼 노숙인들을 돕고 싶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그는 “노숙인들은 어디 가서 일을 해도 제대로 일한 대가를 못 받는다. 업주가 일을 시켜놓고 돈을 떼먹어도, 노숙인들은 약자 중에도 약자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며 “노무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자격을 못 얻더라도 공부한 것을 가지고 노숙인들에게 상담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소망을 전했다.

그는 부활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이 꼭 붙잡아야 할 소망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특별새벽기도회 때 강사 목사님 말씀을 듣고 펑펑 운 적이 있다. 에스겔 16장 6절에 나오는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는 말씀으로, 과거 알고 지내던 노숙인들을 만나면 이 말씀을 꼭 들려주고 있다”며 “부활절을 맞아 상실감에 매여 사는 노숙인들에게도 부활의 예수님이 꼭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로로카페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커피 맛으로 숙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로로카페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커피 맛으로 숙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삼일교회가 세운 로로카페는 어떤 곳?

로로카페는 삼일교회(송태근 목사)가 자립의지를 가진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돕겠다는 취지로 기획했으며, 지난해 기아대책(회장:유원식)과 협력해 개점한 노숙인 자립을 위한 프로젝트 카페다. 15년 넘게 서울역을 중심으로 노숙인 돕기 사역을 해온 삼일교회가 공간과 초기자금을 지원했으며, 공정무역 커피브랜드 ‘비마이프랜드’를 운영해온 기아대책이 사업 전문성을 더했다.

로로카페는 국내에서 상시 매장을 통해 노숙인 자립 기반을 제공한 첫 번째 사례로, 자립 의지를 가진 노숙인들에게 바리스타 전문 교육과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카페 이름인 ‘로로’는 ‘길 위에서 만난 하나님’(Lord on the Road)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삼일교회 근처 숙명여대 앞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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