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사역자들 이중직 수행은 성경과 교회사의 가치 있는 전통

총회교회자립개발원 목회자이중직 신학전문위원회는 3월 31일 대전중앙교회에서 제2차 공개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1차 세미나에서 조직신학 구약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의 관점에서 목회자이중직 문제를 논의했다면, 2차 세미나에서는 신약신학 선교신학 공공신학 분야의 학자들이 각각의 견해를 발표하였습니다. 본 지면에서는 각 주제발표의 요지를 정리해 소개하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신약신학 관점에서 본 이중직/이상일 교수(총신대학교)

바울을 수식하는 어구들에는 선교사, 목회자, 신학자, 편지 저술가와 같은 것들이 있다. 바울은 주를 위한 사역을 하면서도 생업을 위한 일을 하였으므로 자비량 사역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고 오늘날 개념으로는 이중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행전 18장 2~3절에는 바울이 가진 기술이 ‘스께노뽀이오스’라는 단어로 나타난다. 이 단어는 천막 만드는 일 뿐만 아니라 가죽 마감 처리하는 작업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고대의 해석에서는 ‘침대 만드는 사람’, ‘신발만드는 사람’, ‘가죽만드는 사람’등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바울의 직업을 텐트 만드는 일로 설명한다.

누가는 사도행전 20장 33~35절에서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권면한 것을 통하여, 바울의 자비량 선교의 목적에 대해서 보여준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여기서 언급되는 세 가지, 은, 금, 의복은 그 당시에 재산을 축적하여 증가시킬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수사학적인 표현이다.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 말로 표현으로 하자면 바울이 목회하면서 차나 집이나 사는데 필요한 돈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 대신에, 누가는 바울 사도가 ‘자신의 손’으로 일을 했던 세 가지 목적을 설명한다.

첫째, 바울이 일했던 목적은 자신의 손으로 바울과 바울의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바울은 ‘이 손으로…수고하여’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에베소서 4:28에 나오는 바울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게다가,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심지어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였고, 예수님의 말씀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이므로 이것을 기억하라고 명령한다.

셋째, 바울은 자기 손으로 일하여 자기 쓸 것을 충당하고 구제한 것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모본을 보이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모범을 따라 살 것을 명령한 것이다. 바울이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을 돕기 위하여 과도할 정도로 노동을 했던 목적은 결과적으로는 그들에게 모범을 보여서 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선교신학 관점에서 본 이중직/김성욱 교수(총신대학교)

진젠돌프의 리더십으로 활발하게 시작된 모라비안 선교사역은 선교역사에서 선교사의 자립에 대한 구체적인 모범으로서, 17세기 독일 경건주의 운동에서 크게 영향을 입어 일어나게 되었다. 김성태는 그의 저서 <세계선교전략사>에서 독일 경건주의 선교의 네 가지 특색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첫째로, 선교사 훈련 학교를 세워 선교하였는데, 스패너와 프랑케가 함께 사역한 독일의 할례대학은 경건주의의 산실이 되었고 여기서 모라비안 지도자 진젠돌프가 성장하게 되었다.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으로 선교현지의 열악한 환경과 극한 상황 속에서의 생존을 위한 직업훈련까지 수행하였다. 목공일과 자동차정비, 위생과 음식조리법 등 다방면의 기술과 생활훈련을 통해 선교훈련을 준비하였다.

둘째로, 모라비안 선교는 소그룹을 통한 자비량 선교운동으로 그 특징을 가진다고 하였다. 모라비안선교회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여 누구에게도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선교비를 충당하며 선교하게 하였다.” 특히 모라비안 선교는 소그룹을 형성하여 신앙공동체를 구성하여 자급자족하면서 누구에게도 지원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선교비를 충당한 점이라고 보았다.

셋째로, 모라비안 선교운동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수난의 선교원리를 가지고 선교현장에서 선교한 점이다. 넷째로, 모라비안 선교는 선교지에 대한 철저한 적응을 강조하는 선교전략으로 특히 인도 선교에서 복음의 변질 없이 성경을 번역하여 생생한 전달에 노력하였다.

모라비안 교회의 지도자는 사회적 지위나 교육수준에 따라 택한 것이 아니었다. 영적인 은사에 따라서 장로와 교사를 세웠다. 토기장이 레오나드 도버는 유능한 성경교사로서 귀족과 서민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목수 데이비드 니치만과 도자기공 요안 도버 등은 1732년에 덴마크령의 인디안 마을에 가서 자비량선교사로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그들의 선교표어는 ‘직업의 도구를 어깨에 메고 세계의 선교지로 어린 양을 따라가자’였다.

모라비안 자비량 선교사역은 존 웨슬리에게 그 영향력을 발휘하여 영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현대 선교 역사에 나타난 세계의 많은 선교사들이 이들의 영감을 받아 헌신을 다짐하고 위대한 선교사역을 수행하였다. 이는 참으로 현대 선교사의 자립선교사역의 모델로서 그 역사적인 의의를 찾게 된다.

■공공신학 관점에서 본 이중직/김민석 소장(한국공공신학연구소)

오늘날 목회자들이 이중직을 실행하는 첫 번째 이유는 생계를 위한 재정 마련이다. 따라서 만약 이중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교단 차원에서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주면 된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사역지를 찾지 못하거나, 작은 교회의 사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목회자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의심하고, 결국 부르심을 외면하여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가족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까지 꿋꿋하게 강단만 지켜야 하는가? 그 어느 쪽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목회자가 이중직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들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떳떳하게 목회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중직의 신학적 의미를 찾는 작업이 그 한 방법일 수 있다.

공공신학은 특히 현대 사회의 특징인 탈 세속화된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사회도 탈세속화 된 경향을 보일 것이며, 이미 고도로 발전한 시민 사회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에, 기독교가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사회 속에 깊이 참여하여 기여하도록 요청 받고 있다.

공공신학은 기독교인이 사회를 변혁시키도록 격려한다.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신앙생활은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담장을 넘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신앙을 실천하며 그 사회를 변혁하려 시도한다.

나아가 공공신학은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갈 길을 잃은 사회를 향하여 바른 방향성을 제시하도록 돕는다. 기독교인은 지역의 공공선을 추구를 위한 원탁회의를 제공할 수 있고, 반대로 사회가 마련한 원탁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복음을 세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공공신학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는 공공신학에 이중직은 충분히 기여 할 수 있다. 목회자를 향한 사회의 불신과 거부감으로 인해 목회자가 사회로 직접 뛰어든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중직은 그것을 용이하게 돕는다. 직장 동료로, 사업체의 오너로, 지역 사업의 파트너로 만나게 된 목회자들에게는 선입견과 거부감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중직이 공공신학의 실천을 돕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직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이중직을 고려할 때, 그 직업군이 공공 신학적 실천을 용이하게 하는지, 아니면 반대로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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