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온통 난리다.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린다. ‘코인’을 사들이더니 또 다른 것을 찾아 목말라 한다. 주식에 매달리고 주택에 목을 맨다. 주님은 없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이해가 간다. 금수저가 아닌 한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최고의 ‘스펙’을 가진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이런 나라를 안겨준 어른으로 사는 것이 무척 미안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꼰대’라서 그런지 도대체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온 세계가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로 엮인 온라인 시대. 보고 또 듣고 싶지 않아도 보이고 들리는 세상을 살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지구 반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문을 두드리면 달려와 알려주는 세상이다. 다 소화하기도 힘들 만큼의 온갖 정보를 안겨주니 ‘TMI’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공연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이러다 나만 뒤처지고 나만 죽을 것 같다. 망해도 함께 망하는 것은 덜 슬프지만, 남들 다 잘 벌고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못하면 그야말로 ‘루저’ 아닌가. ‘벼락거지’라는 말도 생겼다. ‘벼락부자’라는 말만 들어왔는데, 이게 무슨 말? 그래도 모두 그렇게 말하니 그것이 대세고 그것이 진리가 되고 만다.

왜 이렇게 ‘나’를 잃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온통 그렇다 치더라도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기독교인이라면 달라야 할 텐데. 오히려 신앙을 무기 삼아 더 빨리, 더 많이 갖고 싶은 것 같아 슬프다. 인간 ‘나’도 잃고, 신앙인 ‘나’ 역시 다 잃어버린 모양이다. 거기에 교회까지 나서서 한 몫을 해대니, 복 받겠다고 그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야 말할 게 뭘까? <오징어게임>이 대박을 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런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용어가 있다. ‘영끌’이다. 영혼까지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걱정스럽다. 도대체 영혼이 있기라도 한건 지 싶어서다. 어찌 청년들뿐이랴? 요즘의 나를 보니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원하는 그것을 얻고 싶은 ‘파우스트’ 박사가 돼 버린 것 같아 많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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