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코로나19로 인한 새로운 예배, 당황스럽고 적응이 쉽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체념 단계로 들어간 것인지, 어느새 익숙해졌다. 어쩔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나의 오랜 신념을 삼켜버린 것은 아닌 지 당황스러웠다.

개념 없이, 흐르는 대로 가는 것이 체념이다. 성경적 개념을 신념 삼아 가르치며 지켜왔는데, 사방으로 막힌 상황에서 체념하고 그것을 객관화하고 또 합리화한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체념만 할 수는 없다. 처음 만나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을 신념을 바탕으로 새롭게 개념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개념 없는 태도를 부끄럽게 여겨온 나는, 먼 훗날의 일로 생각하던 것들이 어느새 일상으로 ‘훅’ 들어온 이 현상에 휩쓸릴 수는 없다. 내가 개념 정리에 혼란을 겪으면 나의 가르침에 기대고 사는 내 사랑하는 교회는 어찌하겠는가? 코로나19가 가져온 ‘뉴 노멀’을 사는 내가 현실과 타협하며 체념에 익숙해질 수 없는 이유다.

세상 흐름에 손을 들 때도 없지 않았다. 신세대의 가치와 태도에 동의도 못하고, 또 가로막지도 못하는 무력함에 시달렸다. 그런 나를 코로나19가 자극하면서 살린 것 같아 오히려 고맙다. 그래서 난 세상을 주도할 수 있는 에너지로 삼아야 할 신념을 더욱 굳히고 있다. 그것을 위해 더 공부하고 생각하며 통찰력을 키우는 중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이 상황에서 신념을 바탕으로 확실한 개념 정리를 하고 나니 내일이 분명히 보인다.

신념을 뛰어넘는 양보할 수 없는 신앙의 가치조차도 일제의 강압에 눌려 체념하고 신사 앞에 무릎을 꿇은 아픈 흔적이 남아 있는 한국교회다. 그런 부끄러움은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계속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총칼의 위협 없이도 쉽게 체념하며 세태 따라 흘러가는 교회를 어떻게 지켜낼까? 그래서 더 많은 체념을 강요하는 이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용기를 다잡는다.

나 자신을 좀 더 객관화해서 고집스럽게 보이지 않아야겠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세상을 깊은 통찰력으로 읽어낼 것이다. 무모하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신념으로 혼동하지 않을 유연성을 장착해야 한다. 고집스럽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신념이 느껴질 그런 그리스도인이고 싶다. 훗날, 쳐진 어깨를 가누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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