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주필)

누구나 휴대폰을 쥐고 사는 세상. 횡단보도 앞에서 휴대전화에 매달려 보행신호가 켜진 것도 모를 정도다. 불안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삶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용한 예배당 뒷산 산책길에서 이어폰 없는 스마트폰으로 트로트를 들으며 앞서 가는 사람은 내 귀를 몹시 불편하게 한다. 지하철 안, 스마트폰이 전달하는 영상에 푹 빠져 그것이 소음이라는 것을 모른 채, 볼륨 높인 스마트하지 않은 옆자리 승객도 나의 평온을 깨뜨린다. 이쯤 되면 누군가에게 유용한 정보전달자인 스마트폰이 소음 발생기일 뿐이다. 정보일 수 있고, 즐거움일 수 있는 그 소리가 주변의 누군가에게는 소음이고 조용한 시간을 방해하는 잡음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를까.

산책길의 자연스러움을 깨뜨리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나에게 즐거운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소음일 수 있습니다.’ 저걸 보면 막무가내로 소음을 발하는 그 사람은 소리를 줄일까 싶지만 별 기대는 되지 않는다.

나는 누구보다 많은 소리를 내며 사는 사람이다. 더욱이 그것을 소명으로 여기며 자부심을 갖는다. 물론 듣고 싶어 찾아온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소리를 낸다고 생각하는 나다. 그러나 그것도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고, 깔끔하게 정제되지 않으면 소음이고, 잡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나가는 소리가 소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또 듣는 누군가를 지루하게 하거나, 눈 감게 해서도 안 될 것이라는 의무감에 늘 긴장한다.

내가 생산하는 그 소리가 누군가를 눈물짓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미소를 머금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또 지쳐있는 그에게는 위로를, 앞이 캄캄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되는 가치 있는 소리이기를. 그래서 나를 세우신 그 분이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고 싶다.

공연히 데시벨만 높이며 내 감정을 쏟아내고,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는 잡음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 역시 소음 발생기로 전락되지 않으려면.

듣고 싶지 않은 소리로 나의 조용한 산책을 방해하는, 그렇게 앞서가는 사람을 뒤좇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난 할 수 없이 속도를 높여 그를 추월해 버렸다. 그렇게 소음은 내게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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