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영의 문화 한입] 〈인간수업〉을 통해 청소년 낯설게 보기
[강도영의 문화 한입] 〈인간수업〉을 통해 청소년 낯설게 보기
강도영 〈빅퍼즐 문화연구소 소장〉
  • 박용미 기자
  • 승인 2020.05.26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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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청소년의 경범죄 사건은 줄어든 반면 폭력이나 성범죄 같은 강력범죄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촉법소년에 대한 논란까지 더해져 ‘요즘 아이들 무섭다’라는 이야기부터 ‘라떼 이즈 홀스’까지 들먹이는 어른들의 청소년 관련 간증이 주변에서 자주 들린다. 요즘 아이들이 과거의 아이들보다 유독 다른가는 잘 모르겠으나 확실히 느끼는 것은 청소년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 더욱 혹독해진 것이다. 한국사회가 바라보는 청소년은 성인으로, 아니 대학생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때가 많다. 많이 바뀐듯하면서도 아직 청소년의 처지에서 보고 이해하는 것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낄 즈음 그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드라마 한편이 공개됐다. 2020년 4월 29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인간수업>이다.

코로나19 덕분인지 요즘은 한국이 하는 모든 것에 해외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인데, <킹덤> 시리즈에 이어 <인간수업>도 K드라마의 해외 인기에 큰 몫을 더했다. 청소년에 관한 사회적 이슈를 과거의 전형적인 방식이 아니라 과감한 도전을 통해 새롭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뉴질랜드 유학을 하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죄의 본질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본질을 추구하는 질문에서 출발한 내용이기 때문에 개인과 국가를 넘어 최근 한국에서 대중에게 알려진 ‘텔레그램 성착취 n번방 사건’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인간수업>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로는 상당히 민감한 소재를 건드리고 있다. 자신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사는 주인공이 성매매를 알선하는 앱을 통해서 일명 ‘포주’의 역할을 하고, 익명의 상태에서 학교 친구의 조건 만남과 같은 유형의 ‘자발적’ 성매매를 연결해준다. 드라마는 청소년의 성매매라는 논란의 주제를 그저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끝내지 않는다. 등장하는 다수의 캐릭터는 다양한 청소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한국 땅에서 어른들이 세워놓은 야수 자본주의와 가부장의 질서를 그대로 배우고 따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성매매 범죄자를 그리는 미디어의 방식이 있다. 하지만 <인간수업>은 통속적인 시선을 탈피하면서 모범생이지만 ‘아싸’인 남학생과 모자란 것 없이 부유하게 성장한 ‘핵인싸’ 여학생의 범죄듀오를 만들어낸다. 자연스럽게 시청자는 그들의 범죄 행위보다는 원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청소년 범죄드라마에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편에 서는 착한 어른과 청소년을 이용하는 나쁜 어른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지만 나름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는 바람직한 몇몇 어른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미미하다. 극 중 청소년이 당면한 문제의 원인을 어른이 쫓아가려고 노력하지만, 해결책은 쉽게 손에 닿지 않는다. <인간수업>은 최근 사회적 분위기와는 다르게 청소년의 삶에 꽤 긴 서사를 부여하면서 그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캐릭터 전사의 이유를 막론하고 한쪽은 포식자가 되고 다른 한쪽은 먹이가 되어 서로 먹고 먹히는 성매매 세상의 먹이사슬에 갇히게 되면 결국, 인간의 삶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결말은 누구나 같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인간수업>을 통해 청소년의 입장에서 왜라는 질문을 오랜만에 던져보았다. 그리고 교회 주일학교에 앉아있는 청소년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요즘 교회의 무서운 아이들에게 교회 주일학교 어른들이 ‘라떼 이즈 홀스’만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를 말하는 순간 소통은 일방향이 되고 청소년의 상황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앞에는 보이지만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러 어른 중에 청소년의 편에 항상 서 있던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 바람직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발 벗고 달려간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들어준다. 하지만 아이들의 질문에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선생으로서나 어른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그어놓고 아이들과 관계를 갖는 모습이 지혜로워 보였다. 조금 비약을 보태자면 교회에서 선생님들이 성경말씀이라는 진리를 손에 쥐고 모든 문제의 해법을 알고 계실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그런 모습만 조금 내려놓아도 아이들이 주일학교에서 조금 더 소통할 수 있는 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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