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꿈을 그리다〉 라영환 교수
그에게 그림은 설교 … 삶과 예술 해석하는 기독교적 인문학 필요

아무리 예술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미술가인 반 고흐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화가들에게는 넘사벽일 정도로 반 고흐 개인의 삶이 시대를 막론하고 주목받아 왔기 때문이다.

고흐는 통상 고갱과의 다툼으로 자신의 귀를 자른 광기에 사로잡힌 예술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불운의 천재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따져볼 여지도 없이 그를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던 예술천재로 단정해 왔다.

그러나 누구나 잘 알고 있다는 반 고흐가 진정한 반 고흐가 아님을 알려주는 책이 나왔다. 바로 <반 고흐, 꿈을 그리다>(라영환/피톤치드)이다. 이 책은 반 고흐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 변론서, 어둡고 슬픈 그림이 아닌 영성과 소명이 짙게 배인 그림으로 재해석주는 큐레이터라고 설명해야할 정도로, 고흐의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에서 담아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반 고흐가 아니라 부정적 신화에 가려져 있던 그의 예술세계를 접할 수 있기에, 한 번 책을 들면 이내 마지막 페이지까지 갈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이 책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이라면 저자의 정체성이다. 저자 라영환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종말론을 전공한 조직신학자로서, 현재 총신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조직신학자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예술계를 넘나드는 것 자체로 관심받기 충분하다. 혹자는 라영환 교수의 반 고흐 탐구는 생뚱맞거나, 쓸데없는 일에 신경쓴다고 핀잔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에게는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을 매개로 꿈을 심어주고자 드림포틴즈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찾아가는 인문학 운동을 펼친다는 사실을 알면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책에서 반 고흐에 대한 저자의 변론은 그저 주장이 아니다. 반 고흐 생전의 자료, 그의 숨결이 남겨진 현장 답사, 수년에 거친 연구와 고증에서 그려낸 완성도 높은 또 다른 반 고흐의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저자로부터 슬픈 것 같지만 기뻐하는 삶을 추구했던 화가, 반 고흐의 새로운 자화상을 들어보자.

<반 고흐, 꿈을 그리다>는 어떤 내용인가.

=신화에 가려진 참된 반 고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집필동기였다. 그는 광기어린 천재도, 가난과 불행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화가도 아니었다. 반 고흐의 작품을 제로 이해하려면 화가가 되기 이전인 27년간의 삶을 살펴봐야 한다.

반 고흐는 3대째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구필 화랑 런던지에서 보내면서 당시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목회자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벨기에 남부 보리나주 탄에서 수습 설교자로 지내면서 목회자의 꿈을 키웠다. 이러한 사실은 반 고흐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결정인 해석의 열쇠를 제공한다. 화가가 되기까지 반 고흐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한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가 선택한 두 번째 소명이 화가였다.

그는 설교자가 하는 일과 화가가 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그에게 그림은 설교였다. 반 고흐가 주로 광부와 직조공, 농부와 같이 어려운 사람들을 화폭에 담은 것도 바로 소명때문이었다. 18761029일 반 고흐는 런던의 턴 햄 그린 교회에서 시편 11919절 말씀으로 설교를 한다. 이때 설교의 주제는 시간과 영원이었다. 이 설교는 반 고흐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반 고흐는 시간을 우리가 거하는 곳으로, 영원을 하나님이 거하는 곳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은 영원을 향한 순례라고 여겼다. 영원을 향한 순례라는 모티브는 반 고흐를 평생 사로잡은 주제다.

반 고흐가 1882년에 그린 <슬픔>이라는 작품과, 1890년에 그린 <영원의 문>이라는 작품은 순례자의 성을 모티브로 그린 것이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은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씨 뿌리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반 고흐의 소명은 복음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소명이 인생 전반부에는 목회자로서, 후반부에는 화가로서 표현된 것이었다. 그림은 그에게 보이는 설교였다. 이처럼 예술과 영성을 일치시킨 반 고흐를 책을 통해 알리고 싶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랐고, 그의 아버지가 사역했던 네덜란드 쥔데르트 교회를 방문한 저자 라영환 교수. 라 교수는 반 고흐가 되어 반 고흐를 보기 위해 그의 생의 여정을 탐문해 왔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랐고, 그의 아버지가 사역했던 네덜란드 쥔데르트 교회를 방문한 저자 라영환 교수. 라 교수는 반 고흐가 되어 반 고흐를 보기 위해 그의 생의 여정을 탐문해 왔다.

마치 고흐의 변호인 같은 느낌이 든다.

=소명을 따라 살았던 젊은 크리스천으로 고흐를 소개하고 싶다. 반 고흐는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이후부터 줄곧 노동하는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반 고흐가 그린 인물화의 주인공들은 주로 광부와 직조공, 농부와 같은 소시민이었다. 약한 자들에 대한 반 고흐의 관심은 풍경화에서도 나타난다.

반 고흐는 노동하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풍경화를 그릴 때 무엇인가 부족한 경치를 화폭에 담았다. 그의 풍경화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에 의해서 이름 없는 풀, 덤불, 나무 밑동, 풀뿌리, 부서진 나뭇가지들이 새롭게 태어났다. 초라한 잡목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잡목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게달의 장막처럼 검은 피부도 사랑하는 이의 눈에는 성전의 휘장보다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반 고흐의 그림에는 대상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아름다움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 릴케의 말처럼, 그의 풍경화는 대상을 바라보는 이의 시선을 담고 있다. 반 고흐의 작품에 나오는 이러한 특징은 그림이 반 고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재능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이었음을 가르쳐 준다. ()은 거창하지 않은 작은 섬김에 의해서 이 세상에 확장된다. 반 고흐에게 있어서 작은 섬김은 그림이었다.

반 고흐를 탐구한 저자로서 그에 대한 매력과 가장 영감 준 작품을 꼽는다면.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반 고흐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를 위하여 헌신하였던 것처럼, 반 고흐는 예술로 가난한 자를 섬기고자 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묘사했다. 이를 통해 이들이 충분히 정직하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마치 예수께서 당시 제도권에서 멀리하던 세리와 창기, 죄인들과 함께 하신 것처럼, 반 고흐도 그림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했다. 이것은 반 고흐가 1876년 런던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부터 지속적으로 추구한 가치였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가 반 고흐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소개했다. 둘은 어떤 형제애를 나눴나.

=테오는 아트 딜러였다. 일찍부터 형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형이 미술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했다. 10년간 매달 150프랑을 지원했다. 당시 노동자 평균 월급이 50프랑이었으니, 동생이 얼마나 형을 후원했는지 알 수 있다. 아마 테오가 없었다면 지금의 고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 질문을 많을 받을 것이다. 조직신학자가 어떻게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쉽지 않은 주제의 책까지 집필하게 됐나.

=신학의 기능 가운데 하나가 세상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일이다. 예술은 진공상태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은 현존재로서 자기가 사는 세계와 불가분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한 예술가의 사상 혹은 활동도 그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의도와 상관없이 자기가 살던 시대를 반영한다고 본다.

신학자로서 예술을 통해 시대를 해석하고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있는 땅이 거룩한 땅이고, 우리가 하는 일이 거룩한 일이다. 트렌트 종교회의 이후에 반종교개혁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목회자들이 그런 그림을 보면서 감동 받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림 안에 담긴 세계관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삶은 세계관 전쟁이다.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은 세계관 운동이다. 이제는 서구인이 아니라 우리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조직신학을 했기에 더 가능하다고 본다. 2007년부터 미술학자들이 모이는 콘퍼런스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어쩌면 미술은 그분들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나를 계속 부르는 이유는 그분들이 보지 못하는 신학적인 시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기독교는 신과 인간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인간 실존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하나님을 더욱 필요로 하게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인문적 소양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종교개혁자들은 인문학자였다. 인문학이란 사람들마다 다르게 정의하겠지만 그 핵심은 인간의 실존에 관한 질문이다. 칼빈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죄와 비참함이 하나님을 떠난 데 있다. 반 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 없이 독립적인 지식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 인간이 처한 어려움의 원인이다.

인문학은 인간학이나 인본주의 학문이 아니다. 제네바 아카데미도 인문학을 필수적으로 가르쳤다. 세속적 인문학에 대항해서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적 인문학을 제시해야 한다. 신학자가 왜 예술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고흐를 통해 이 시대에 복음은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교회는 적대적이고 이질적인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하는가? 고흐는 그 부분에 대해 많은 혜안을 제시한다.

영국에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종말론을 전공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의 장인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인 인간에게 관심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역사-우리’, 이 세 기둥이 신학적 관심이다.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자신의 신앙을 직업과 일상에서 나타내고자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목회자들에게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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