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물론 한글 개역개정판 성경에는 ‘뽕나무’가 아니라 ‘돌무화과나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그건 왠지 입에 착 붙지를 않는다. 짧은 팔 다리로 뽕나무에 기어 올라가서 마침내 예수님을 만난 키 작은 삭개오. 그냥 미소가 지어진다.
대구에도 뽕나무골목이 있다. 대구골목투어 2코스 가운데,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과 구(舊) 제일교회 사이에 있는 골목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조선에 왔던 장수이자 지관인 명나라 사람 두사충이 조선으로 귀화하면서 대구에 정착하고, 바로 이곳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오늘날까지 뽕나무골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이 거리는 도시화가 진행되어 더 이상 뽕나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뽕나무골목으로 불린다.

뽕나무골목을 걷다보면 흥미롭고도 애틋한 옛 이야기들 속으로 빠져든다.
뽕나무골목을 걷다보면 흥미롭고도 애틋한 옛 이야기들 속으로 빠져든다.

이 골목에는 재밌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두사충이 뽕잎을 따러 뽕나무에 올라갔다가 담 너머에서 절구를 찧는 과부의 모습에 반해버려 그만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자 두사충의 두 아들들이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이 서로 결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딴다’는 우리 속담의 유래는 이처럼 두사충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대구선교 초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 아담스 선교사이다. 어느 날 아담스 선교사가 뽕나무골목에서 소리 높여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뽕나무골목에는 서툰 조선말로 복음을 전하는 코쟁이 선교사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지게에 나무를 한 짐 짊어지고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던 지게꾼이 있었는데, 그만 삐져나온 솔가지가 아담스 선교사의 얼굴을 긁고 말았다. 선교사의 얼굴에 긴 상처가 났고,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은 싸움구경이 아니던가? 게다가 둘 중 한 사람은 보기 힘든 서양사람. 몰려든 구경꾼들은 과연 양코쟁이들은 어떻게 싸울까, 예수쟁이는 주먹을 휘두르고 멱살을 잡을까,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아담스 선교사를 바라보았으리라. 그런데 웬걸! 싸움은 너무 시시하게 끝나버렸다. 아니 애초에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아담스 선교사가 지게꾼에게 정중히 사과를 한 것이다. “제가 좀 주의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모여 들었던 사람들은 실망하면서 자리를 하나둘씩 떠났다. 하지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정중히 사과하는 아담스 선교사에게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 사람이 바로 대구 최초의 신자인 서자명이다.
서자명은 아담스 선교사의 인격과 삶에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서자명은 대구의 뽕나무골목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지금도 세상은 아담스 선교사와 같은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서 감동을 받을 것이다. 뽕나무골목을 걸으며,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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