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설교③] 동방에서 온 박사들 (마 2:1~12)
[성탄설교③] 동방에서 온 박사들 (마 2:1~12)
  • 기독신문
  • 승인 2019.12.1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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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 목사(삼일교회)

그리스도 정신을 품은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송태근 목사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삼일교회)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 2:9~11)


‘성탄절’하면 여러분들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크리스마스 캐럴입니까? 크리스마스 트리입니까? 크리스마스 선물입니까? 혹시 박싱데이(Boxing Day) 인가요? 성탄절은 1년 중에 가장 설레고, 화려한 기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날인데도 불구하고, 캐럴의 요란함과 성탄트리의 화려함 속에 예수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의 첫 순간을 기록한 사도 마태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기록했을까요? 마태가 성탄절을 기록하며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살펴보고, 성경의 ‘진의’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본문의 대조적인 두 그림
본문의 장면은 매우 익숙합니다.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베들레헴으로 와서 예물을 드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삼척동자도 아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 마태는 어떤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을까요? 익숙한 이야기지만 자세히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절입니다. 예수님은 ‘헤롯 대왕’이라고 알려진 헤롯 왕이 다스리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이 시기는 로마의 압제를 받던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헤롯 왕’이라는 단어는 적지 않은 모순을 담고 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중에 헤롯은 왕이 되기 위해 온갖 아첨과 뇌물을 바쳐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 시대의 통념에서 본다면, 헤롯은 왕이 되기 위해 어떤 대가를 바쳤는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흥미롭게도 1절에서는 ‘헤롯’과 대비되는 인물들이 나옵니다. 바로 ‘동방박사’입니다. 과연 동방박사는 누구이며, 왜 베들레헴까지 왔을까요? 이것도 당시의 사회적 통념을 알지 못한다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당시 사람들은 ‘아람어’를 썼습니다. 아람어는 페르시아어의 방언입니다. 유대인은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고,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무찌르면서 팔레스타인은 예수님 시대까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습니다. ‘동방박사’라는 단어인 ‘마구스’ 혹은 ‘마기’는 페르시아의 ‘점성술사’를 가리킵니다. 페르시아의 점성술은 바벨론의 천문학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지금처럼 과학 문명의 사회에서도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정한 별자리와 음력 같은 영향을 받고 있는데, 그 당시의 천문학은 최첨단의 과학적 지식입니다.

천문학이 바벨론과 페르시아를 관통했다면, 그 사이에는 누가 있을까요? 바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소년 시절에 바벨론으로 잡혀 와서 바벨론 천문학을 배웠고, 총리가 됐습니다. 노년에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가 세워졌는데도, 그는 여전히 최고의 지위를 누린 인물입니다. 다니엘이 페르시아에 미친 영향은 얼마나 컸을까요? <다니엘>서를 살펴보면, 다니엘이 페르시아에서 하나님 나라를 분명히 전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페르시아의 점성술사들이 다니엘로부터 들었던 메시야 이야기. 그것이 후대로 구전되면서 점성술사들에게는 ‘믿음’으로 전해졌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 페르시아는 없어졌고, 로마의 적국이었던 ‘파르티아 왕국’만 남아 있습니다. 파르티아는 로마의 적국으로서 늘 로마에 위협이 되었던 나라였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동방박사의 행보는 놀랍습니다. 오래 전부터 전해내려 온 메시야 이야기를 마음속에 새겼던 사람들이 놀라운 별이 나타나자 적국의 식민지 한복판에 목숨을 걸고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2절을 보면, 동방박사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로마 제국에서 뇌물과 아첨으로 헤롯이 유대인의 왕에 오른 것을 파르티아의 이 지성인들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에게 목숨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믿음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소망이었습니다.

독일의 크리스천이었던 요하네스 케플러라는 과학자가 있습니다. ‘케플러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이지요. 케플러는 주전 5년 무렵에 태양-지구-목성-토성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섰던 순간을 발견하며, 이것을 ‘우주의 대화합’이라고 명명합니다. 그렇다면 매일 하늘을 관찰했던 천문학자들이 이것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대대로 전해 내려온 작은 가능성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3절을 보면, 이들과 정확하게 대비되는 반응이 나옵니다. 마태는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동했다고 기록합니다. 4절에서 헤롯은 대제사장과 서기관을 불러 모아서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검증을 합니다. 파르티아의 점성술사가 작은 가능성을 붙잡았던 반면, 5~6절을 보면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의 ‘확실한’ 가능성을 검증하지만 그것을 붙잡지 않는 아이러니를 봅니다.

이것이 마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대조적인 그림입니다. 7절에서 헤롯은 동방박사들이 관측했던 내용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본인도 베들레헴에 가서 경배하겠다고 말합니다.

불확실함 속의 소망(동방박사)과 확실함 속의 태만함(유대인)
작은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했던 ‘파르티아의 지성인’들은 10절에서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는 기록처럼 환희와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11절에서 그들은 예물을 바쳤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무역을 생각했을 때, 그들의 예물은 인생을 보장해 주는 자산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발견한 보화가 그만큼 값진 것임을 고백합니다.

반면, ‘유대의 지성인’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확인했고, 8절에서 헤롯은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헤롯은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입니다.

3절에서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으로 간 유대인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지 이스라엘 지도를 살펴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와 교역자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도보로 2시간이고, 자동차로는 20분 거리입니다. 옛날 사람들에게 2시간 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입니다. 마태는 이런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소란함과 소동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는 모습. 어쩌면 서론에서 말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예수님께 찾아온 사람들은 로마 세계에서는 적국의 백성인 동방박사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고, 로마의 ‘적대 국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나그네와 외인들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을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했기 때문입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산업혁명 시기에 영국교회는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고, 부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19세기 영국의 사회상이었습니다. 그때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마음에 새기던 이름 없는 작가 찰스 디킨스가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으로 알려진 <크리스마스 캐럴>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고, ‘그리스도의 정신’이 드러나야 한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크리스마스 캐럴> 소설에 “예수님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입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찰스 디킨스는 이 소설을 쓰면서 가난한 고아들과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무명의 한 작가에 의해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누자는 마음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고아원이나 불우한 이웃에게 ‘기부’하는 문화도 찰스 디킨스의 이 작품 이후에 생긴 일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한 명의 크리스천 작가가 바꾼 현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마음에 품은 한 사람. 바로 그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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