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목사(달서교회·전 총회역사위원장)

박창식 목사(달서교회·전 총회역사위원장)
박창식 목사(달서교회·전 총회역사위원장)

제100회 총회에서 역사위원회를 설립한 이후 지금까지 총회역사관 개관을 위시하여 교단 내의 관련 업무들을 처리해 왔다. 단기간에 여러 곳의 사적지와 순교사적지를 발굴하고 지정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런 일들을 수행하면서 계속 제기되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과연 우리 교단의 역사관은 무엇인가?’하는 것이었다. 타 교단에 비해 우리 교단은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이 가지는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왜 역사의식 부분에서 이처럼 집단적인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일까?

관점에 따라 이견이 있겠지만, 우선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사 연구의 후발주자라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역사란 바르게 기록하는 것만큼 누가 먼저 기록하는지도 중요하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통합 교단의 역사관을 대변하는 민경배 박사의 <한국기독교사>(1974)를 통해서 역사적 실체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책에는 1959년에 있었던 통합 교단의 이탈 원인을 박형룡 박사의 3000만 환 사건에 두고 있다. WCC에 반대하는 신학적인 이유가 분명한 원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사관이 정치사관에 의해 선점을 당했던 것이다. 나중에 일부 고신 교단의 사가들까지 이에 동조할 정도였으니 소위 합동 교단의 역사 정체성은 첫 출발부터 혼돈을 겪었던 셈이다.

한국교회사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몇 가지 사관이 있다. 우선 백낙준 박사의 선교사관이다. 백낙준은 예일대학교에서 배운 서양사학의 방법론에 따라 한국교회사를 최초로 연구하였고 그것을 번역하여 <한국개신교사>(1973)로 출판했다. 선교사관으로 일관한 이 책은 한국교회사를 학문의 장으로 이끌었다는 의의를 가지지만, 동시에 한국교회사의 실질적 주역이었던 한국인들의 신앙체험과 고백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결여되었다는 결정적인 한계를 노출했다.

그러자 선교사관의 극복을 목적으로 민경배의 민족교회사관이 등장했다. 1970년대 일반역사학계의 최대 과제가 식민사관의 극복이었다면 당시 한국교회사의 최대 과제는 선교사관의 극복이었다. 민경배는 ‘내연(內燃)과 외연(外延)’이라는 독특한 역사인식의 틀로 한국교회사를 단순한 제도의 변천사나 사건의 나열로 보지 않고 민족교회라는 주체적 관점으로 서술한 결과 <한국기독교사>를 출판했다.

1980년대 들어 민중이 화두가 되면서 엘리트 중심의 민족교회사관이 비판을 받고 소위 민중교회사관이 등장했다. 이 사관은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기층교인들의 신앙과 생활, 교파우월의식에 의해 변방으로 밀렸던 단체와 인물들이 재평가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신학과 교회관에서 완전히 이탈하면서 정치신학화가 되고 말았다.

한국교회사에서 이처럼 역사관의 변증법적인 흐름이 진행되는 동안 장로교회 각 교단들의 역사 편찬은 어떠했는가?

우선 통합 교단은 앞서 언급했던 민족교회사관을 기본골격으로 하는 교단사를 편찬했는데 바로 <대한예수교장로회백년사>(1984)이다. 기장 교단 역시 민중교회사관을 받아들여 교단사를 편찬했는데 <한국기독교100년사>(1992)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단의 역사관은 무엇인가? 적어도 한국교회사의 주류 속에서 우리 교단의 자리는 매우 옹색해 보인다. 물론 일각에서 개혁주의적 전통을 강조한 사관을 주장했지만 역사란 선언만으로 되지 않고 결과물로 평가를 받는다. 또한 복음주의사관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과연 복음주의의 틀로 우리의 역사와 신학을 담아낼 수 있는가? 어쨌든 우리는 그동안 역사관의 주도권을 진보 진영에 다 넘겨주고 말았다. 물론 그것들이 우리를 담아낼 수 없는 그릇들이었다고 해도 역사적 안목에 대한 총체적인 위기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교단은 뒤늦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백년사>(2006)를 편찬했다. 교단 역사의 산 증인들이 필진이었기에 기념비가 될 만한 저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몇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첫째, 역사 기술의 생명인 사관의 부재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사관 없는 역사는 죽은 것이다. 둘째, 여러 필진들의 글을 모아 편집한 것이라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역사의 숨결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셋째, 우리 교단의 역사만이 가지는 시대마다의 특수성을 충분히 그려내지 못했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의 역사의식 부재 내지는 약점으로 표출되지 않았나 사료된다. 모처럼의 격려 속에 힘 있게 출발한 총회역사위원회가 당면한 과제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교단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루 속히 우리의 숨결이 살아있고 아름다운 신앙고백들이 고동치는 그런 역사가 수립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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