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환 목사(춘천 온누리교회)

김창환 목사(춘천 온누리교회)
김창환 목사(춘천 온누리교회)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가면 권력의 맛을 알게 된다.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국가권력, 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권력, 국민이 우매하다 생각하며 여론을 조성하는 언론권력, 그리고 신앙을 정치화해 만든 종교권력을 이용한다. 서로의 이익에 따라 타협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며 이를 연장할 궁리를 한다. 탐욕을 가진 권력자에게 국민은 정권연장의 도구일 뿐이지,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인맥에 포위되고, 거대한 탐심의 탑에 둘러싸여 국민, 세상, 나아가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처음 납골당 문제가 불거졌을 때 들었던 조언이 있다. 나와 동역하던 장로님은 납골당 같은 문제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해결 안 될 수도 있으니 다른 곳에 연금을 붓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바로 총회은급비를 거둔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아직까지도 납골당 문제는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많아지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총회는 어떤 대책과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묻고 싶다.

총회가 총회세계선교회(GMS)에 지원하는 액수가 연간 1억원 뿐이라는 말을 들었다. 많은 수의 선교사는 자랑하고 있고, 지원은 적게 해주는 현실이다. 단일 교단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 수를 가졌다는 사실이 민망한 상황이다.

가장 단순한 대책 중 하나는 총회세례교인헌금만을 가지고 은퇴 선교사들이 거처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크게 힘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다. 총회는 선교회 지원 질문에 답해야 한다.

<기독신문>은 유일한 총회의 언론기관이다. 이런 중요성을 지닌 <기독신문>에 대한 총회의 투자가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기독신문>에는 이사회가 있다. 이사는 이사회비를 내고 자신이 섬기는 기관이 발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또 신문사의 지사는 전국 16곳이다. 인쇄부수에 비해 그 수가 많다. 수를 줄여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는지 묻고 싶다.

총신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이사회비는 내지 않고 명예와 이익과 정치 입지를 구하는 자리로 생각한다면 욕심일 뿐이다. 총회임원에 출마하는 분들은 총회발전기금을 내고 있다. 총대가 아니라서 모르지만, 그 발전기금이 얼마나 모이고 있으며 어떻게 쓰이는 지 궁금하다.

정치하는 분들은 걸핏하면 법을 들먹인다. 노회 때나 총회 때나 마치 자신이 법 전문가인 양 말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세속정치도 지방자치를 발전시키고 있는데 총회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회제는 왜 하지 않으며, 비대해진 총회를 계속 지속시켜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총회총대로 두세 번 참석한 적이 있다.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도 갔다. 그 과정에서 총대나 목사, 장로에게 독특한 특권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일부이긴 하지만 회의, 예배, 기도회, 강의, 집회 시간에 전화를 받는 특권, 밖에서 모임 갖는 특권, 뒷자리를 찾아 잡담하는 특권이 있었다. 집회가 끝나기도 전에 나가는 특권을 향유하며 교회 가서는 성도들에게 뭐라고 가르칠까?

이제 여름이다. 연합기관마다 수양회가 있다. 이 즈음에 어김없이 나오는 광고가 있다. 수양회비는 교회 재정에서 부담해 달라는 것이다. 많은 이가 참석했으면 하는 마음에 낸 광고인 줄은 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어린이성경학교를 비롯해 모든 수련회를 진행할 때도 개인별로 회비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지도자인 어른들이 회비마저 교회서 부담해 달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필자는 섬기는 노회 장로수양회 때 이와 같은 말을 했다. 그러자 많은 이들이 자비로 헌신하고 있다. 그 대신 교회는 광고 후원비를 통해 어려운 분들을 돕는 장점이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목사 역시 자비로 회비를 낼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개인이 내는 의견과 조언, 질문에는 시비를 걸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다. 검토하고 수정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쪽으로 시행하면 된다.

총회가 인정하는 공식기관은 아니지만 많은 협의회들이 세력화, 정치화, 권력화가 되어 압력단체로 변질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교단을 위해 헌신하지 않고 자기정치나 하면서 행여 총회 돈을 빼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총회는 지교회들이 왜 구제헌금을 총회로 잘 입금하지 않는 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총대들은 총회를 섬긴다고 말한다. 어느 선배 목사님은 항상 총회가 잘 되고 총회를 받들어 섬겨야 교회가 잘 된다고 하셨다. 이는 잘못됐다. 거꾸로 된 의식이다. 지교회가 잘 되어 받쳐 주어야 총회도 잘 된다. 총회의 권한은 교회와 노회로부터 위임된 권한이다. 이를 권력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마음에 닿는 겸손과 희생을 해야 한다. 정쟁은 없고 정책이 있는 지도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 기쁨 드리는 총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104회 총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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