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 펜윅 130주년 학술대회 … ‘3자원리’ 강조

기침교단이 한국적인 선교정책으로 부흥을 일군 펜윅 선교사 13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 후 총회장 박종철 목사를 비롯해 교단 관계자와 학술대회 발제자들이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기침교단이 한국적인 선교정책으로 부흥을 일군 펜윅 선교사 13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 후 총회장 박종철 목사를 비롯해 교단 관계자와 학술대회 발제자들이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펜윅 선교사는 후원자도 없이, 한국의 문화 속에서 자립 자치 자전의 선교를 일구었다. 그의 선교는 침례교회의 미래이다.”

기독교한국침례교회가 말콤 C. 펜윅 선교사의 선교 130주년을 맞아 학술대회를 열었다. 발제자로 등단한 안희열 교수는 펜윅 선교사의 토착화 선교를 주제로 발제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안 교수는 “그의 선교로 인해 1906년 31개였던 교회가 1935년 200개로 확장됐다”며, 오늘날 침례교회가 △한국 상황에 맞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투철한 소명의식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 △물질의 깨끗함과 투명성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등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펜윅 130주년 학술대회는 4월 22일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총회장 박종철 목사 증경총회장 안희묵 목사 등 교단 중진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민경배 교수(연세대 명예)의 기조강연에 이어 증경총회장 조효훈 목사와 안희열 교수(침신대) 이경희 교수(침신대) 김용국 박사(한국복음주의신학회 협동총무) 등이 강사로 나섰다.

강사들은 선교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후원 교단도 없던 펜윅 선교사가 놀라운 선교열매를 맺은 이유에 집중했다. 민경배 교수는 그 이유를 “동양의 풍속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한국 사람과 상황에 맞는 토착화 선교 때문”이라고 밝혔다. 민 교수는 “펜윅은 한국적인 것을 사랑했으며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우수하다고 믿었다. 그의 선교는 거대한 사도행전”이라고 말했다. 조효훈 목사 역시 ‘펜윅과 문화’란 주제로 펜윅 선교사의 토착화 선교를 강조했다. 조 목사는 한국인과 격의 없이 살면서 한국문화 속에서 선교전략을 개발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안희열 교수는 펜윅의 토착화 선교전략이 헨리 벤의 3자원리에 부합했다고 설명했다. 헨리 벤은 미국 북장로교회의 네비우스 선교사처럼 ‘자립(自立) 자치(自治) 자전(自轉)’의 3자원리를 강조했다. 안 교수는 펜윅 선교사가 자립선교를 위해 원산에 약 6600㎡(2000평)의 땅을 개간해 과수원을 운영하며 선교와 교회개척 재정을 마련한 점, 가정교회 형태로 개척을 해서 자립을 추구한 점, 신명균 이종덕 등 한국인 성도를 선교책임자로 임명하고 8년 만에 교단을 한국인에게 위임한 점 등 탁월했던 선교정책을 설명했다.

펜윅 선교사 이후 130년 침례교회 역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또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여느 교단과 달리 일관된 항일의식을 고수했다는 것이다.

김용국 박사는 ‘말콤 C. 펜윅과 대한기독교회의 항일 활동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발표하며 “한국침례교회의 전신인 대한기독교회는 항일의 입장을 고수한 거의 유일한 개신교단”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침례교회들이 을사보호조약 체결 직후 연합구국기도회를 개최했고, 펜윅 선교사는 직접 애국가를 작사해서 보급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제 하에서 포교계 제출을 거부하고 신사참배 역시 거부하다가, 결국 천황숭배 반대로 교단이 폐쇄당했다고 말했다.

김용국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우상숭배가 아니라며 타협한 것과 오늘날 교회가 세속주의에 타협하는 모습은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과거 침례교회들의 순수한 복음신앙 정신을 이어받고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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