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어느 수녀가 임신했다. 주범은 남자 수도원 원장이었다. 그런데 수도원 원장은 시치미를 뚝 떼고 말단 수도사에게 덮어 씌워 버렸다. 그래서 그 말단 수도사는 평생을 죄인으로 살았다. 세월이 흘러 원장도 죽고 말단 수도사도 죽었다. 그런데 염을 하기 위해 말단 수도사의 옷을 벗겨 보니까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얼마든지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치욕을 짊어지고 수도원장을 지켜 주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피로써 언약백성들을 구원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그 고난을 예수님의 치욕이라고 말씀하고 있다.(히 13:12~13)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도 그 예수님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자고 말한다.(히 13:13)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영광스럽고 거룩하다 할지라도 지상교회는 불완전하기에 얼마든지 죄와 부정이 틈탈 수 있다. 그럴 때 세상은 도덕적, 윤리적인 시각으로 교회의 치욕을 공격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조차 선악과적 마인드로 의도적으로 공격하고 까발리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몸 된 교회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면 생명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고후 4:10, 벧전 4:13~14) 고난주간 동안 영문 밖에서 당하신 주님의 치욕을 깊이 묵상하자. 아니, 우리도 그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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