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 독립운동가 상하이로 망명 ··· 만국공묘서 파묘, 후손과 숭실대 후배들 참여

김태연 애국지사의 생전 모습.
김태연 애국지사의 생전 모습.

숭실 출신으로 3·1운동에 앞장서다 중국 상하이로 망명했던 김태연 애국지사의 유해가 9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처는 3월 28일 상하이 창닝구의 외국인 공동묘지인 만국공묘에서 김태연 지사의 파묘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고인의 유족과 최영삼 상하이 총영사 등과, 고인의 모교인 숭실대학교(총장:황준성)에서 파견한 교수·학생 대표단이 참여했다.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김태연 지사는 숭실대 8회 출신으로 재학시절 문학부 교가를 작사하는 등 많은 재능을 보이다가, 3·1운동이 발생한 1919년 5월에 상하이로 망명해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특히 여운형과 함께 상해대한거류민단을 조직해 한인들의 자치 활동을 이끄는 한편, 한인 자녀들의 교육기관인 인성학교 교장 등을 지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 모금과 무기구입을 비롯한 무장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1921년 30세 나이로 병사한 바 있다.

고인의 유해는 만국공묘에 박은식 신규식 노백린 김인전 등 애국지사들과 함께 묻혀 있었으나, 다른 지사들의 유해가 1992년 한중수교가 이루어지며 국내로 송환된 후에도 외롭게 남아있었다.

김태연 지사의 유해 국내송환을 위한 상하이 만국공묘의 파묘식에 고인의 후손과 숭실대 후예들이 함께 하고 있다.
김태연 지사의 유해 국내송환을 위한 상하이 만국공묘의 파묘식에 고인의 후손과 숭실대 후예들이 함께 하고 있다.

파묘식에 유족대표로 참석한 고인의 외순자 조관길 씨는 “1975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김 지사의 셋째 딸)도 외조부님께서 묻혀 계신 곳이 상하이라고만 아셨지 정확한 위치를 몰랐는데, 5년 전 정부에서 외조부님 무덤을 찾았다고 연락이 와 고국에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기독교 학교인 숭실대는 1897년 평양 숭실학당으로 시작해 1938년 일제 강점기 때 대학으로서는 유일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했다. 특히 조선총독부 경찰이 ‘불령선인의 소굴’이라 지칭할 정도로 애국정신과 기독교신앙으로 무장한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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